국가 안보와 통상 분야의 수장이 모두 방미한 것은 이 시기를 놓치면 향후 한미 외교가 꼬여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예기간 만료일로 통보한 날짜(8일)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관세 협상을 비롯해 한미 정상회담, 안보 협력 등을 큰 틀에서 논의하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구체적인 품목별 관세율 조정과 상호관세 유예 연장을 협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위 실장은 6일 미국 워싱턴 DC로 출발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사이 협의 국면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미국 카운터파트와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 있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과 회동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앞서 루비오 장관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찾기 전 방한할 계획이었지만 불발됐다. 이에 위 실장이 처음으로 미국을 먼저 찾아 미 정부 측 고위급 인사들과 각종 현안에 대한 협상의 물꼬를 트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관세 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4월 상호관세 발표 이후 적용한 90일 유예기간이 8일로 종료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더 높은 관세율을 통보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쌍방에 호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쌍방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위 실장보다 먼저 미국으로 향한 여 본부장은 상호관세 유예 연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여 본부장은 5일(현지 시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상호관세 유예를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양측이 선의에 기반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상호 입장 차이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산업부는 밝혔다.
국내 산업계는 품목 관세율 조정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가 유지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입는 타격은 불가피하다. 여 본부장은 양국의 최종 합의에 품목관세의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양측이 모두 윈윈하는 호혜적 방안 마련을 위한 협상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그간 양국이 쌓아온 견고한 협력 모멘텀을 유지하고 미국 관세 조치에 대한 우호적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국익에 기반한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위 실장 역시 관세 협상에 대해 한국 측 입장을 전달하면서 보다 포괄적인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구체적인 협상안이 나오지는 않더라도 관세 완화라는 큰 틀에 합의하고 언제까지 협상안을 다시 만든다는 식의 방향만 설정해도 긍정적인 결과”라며 “조선 산업 협력이나 방위비 분담금까지 포괄하는 차원의 협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위 실장은 지난달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 대신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짧은 대화를 나눈 바 있다. 위 실장이 귀국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많은 관심이 조선 분야 협력에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힌 만큼 이번 방미 일정에 관련 논의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방미에서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면 관세 협상의 호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더불어 집권 초반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한미 정상회담 조기 성사는 중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중동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귀국해 무산됐다. 이후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불참과 루비오 장관의 방한 불발 등 좀처럼 양자 회담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이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목표로 시기를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회담이 성사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위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논의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여러 현안들 중 하나로 그에 대해서도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이 검토 중인 주요국 특사 파견에 대해 위 실장은 “아직 협의하는 사안으로 협의가 완료되기 전에는 내용을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말씀드리기에는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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