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미술 갤러리인 서정아트센터가 아트테크(미술+재테크)를 내세워 폰지사기를 벌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아트테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2015년께부터 시장에 뛰어든 데다가 ‘큰손’ 고객이 많아 피해 금액이 최소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예상되자 서울경찰청도 광역수사단을 투입해 전면 수사에 나섰다.
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서울 강남구 소재 서정아트센터 본사와 대표 이 모 씨의 휴대폰 등을 지난달 말 압수수색했다. 피해자들은 수익금 지급이 5월 돌연 중단되자 이 씨를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청은 전국에 접수된 고소장을 지난달 초부터 모두 이첩받아 사건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 수만 300여 명으로 알려졌다. 서울청 관계자는 “고소장이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업체 측은 소속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1년간 센터에 맡기면 전시회와 광고·협찬 등으로 수익을 내 월 0.8%씩을 지급하겠다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갤러리가 재매입해 원금을 보장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최근 들어서는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의 지분을 일부 구매하면 월 1%씩의 수익을 지급하겠다며 ‘조각투자’에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센터는 올 5월 말부터 돌연 수익금 지급을 멈췄다. 당시 이 대표는 딜러들을 통해 구매자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국세청 세무조사 때문에 6월 30일에 이자를 일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서정아트센터의 체납액은 총 55억 원, 이 대표 개인 체납액은 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말 2차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경찰 압수수색 등으로 인해 업무가 부득이하게 중단됐다’며 당분간 업무 정상화가 어렵다고 공지했다. 다만 이 공지 역시 딜러들을 통해 일부 구매자들에게만 전달됐으며 이 대표는 원금을 돌려달라는 피해자들의 연락을 일체 피하고 있는 상태다.
서정아트센터의 사기 수법은 앞서 문제가 됐던 갤러리들과 거의 동일하다. 주로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상품을 판매했으며 연 10%대의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면서도 원금을 보장하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서정아트센터의 경우 2015년부터 아트테크 투자 상품을 판매해온 만큼 피해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1000억 원대의 피해액을 낳은 갤러리K와 지웅아트갤러리의 경우 각각 2017년, 2019년 설립됐다.
미술업계의 한 관계자는 “갤러리K가 신생 스타트업이라면 서정아트센터는 건실한 중견 기업같은 이미지”라며 “꽤나 무게감이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사기 의혹 이후 업계 내에서도 충격이 컸다”고 전했다. 재작년 초 3000만 원을 투자했다는 피해자 이 모 씨는 “서정아트센터의 경우 최소 투자금액이 3000만 원으로 타사보다 진입 장벽이 높아 ‘큰손’ 투자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주변에 인당 4억~5억 원을 투자한 피해자들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아트테크 사기는 2023년부터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아트밸류·아트버디·동백아트갤러리 등 다수 갤러리 대표들이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재판에 넘겨진 지웅아트갤러리 회장 정 모 씨는 3월 1심에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아 항소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시중 은행권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원금 보장 상품의 투자자를 모집하는 곳이 있다면 신중하게 접근해달라”고 당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