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희의 일본톡에서는 외신 속 일본의 이모저모, 국제 이슈의 요모조모를 짚어봅니다. 닮은듯 다른, 그래서 더 궁금한 이웃나라 이야기 시작합니다.
“건강들하십니까(겡키데스까)!!!!”
지난 4월, 일본 아이치현의 한 연회장. 50대 남성이 무대에 올라 프로레슬러 (故) 안토니오 이노키의 유명한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130여 명의 관객은 일제히 환호하며 이노키의 또 다른 구호로 화답했습니다. “하나, 둘, 셋, 가자!!!!”
유명 가수의 콘서트 현장이냐고요? 아닙니다. 이 에너지 넘치는 자리는 이름조차 생소한 ‘생전 장례식’인데요. 행사 주최자이자 주인공은 53세의 남성 히가시가와 가츠토시입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이 남성이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일본톡에선 일본 사회에서 조용히 확산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끝’이 아니라 ‘다시 사는 자리’
히가시가와씨는 지난해 2월,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3개월간 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이대로 조용히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떠나면 안 된다. 살아 있는 동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감사제’라는 이름의 생전 장례식입니다. 그는 한 장례회사와 논의해 6개월간 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장례식장’ 대신 ‘공공 연회장’을 빌렸습니다. 입관 대신 노래와 연설, 조문 대신 식사와 건배, 슬픔 대신 감사를 담은 파티는 그렇게 열렸습니다.
장례식 당일 단상에 오른 그는 130여 명의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보물은 여러분과의 인연입니다.” 히가시가와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직원들부터 그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와 동창생, 친인척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하러 왔다가 오히려 용기를 얻어 갔습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더 힘을 받았다” “연이 끊겼던 사람들과 다시 연결된 것 같다” 등 긍정적인 소감이 잇따랐죠. 모두가 웃으며, 또 때로는 울며 “당신을 만나서 고마웠다”고 말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히가시가와씨에겐 다음 목표도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3년 후 복귀 파티’를 여는 것입니다.
바쁘게 살다 만나는 자리가 장례식, 그렇다면...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오사카에 사는 야스이 다카히사(78)·야스이 미치코(75)씨 부부는 지난해 4월 한 장례식장에서 ‘부부 생전장례식’을 열었습니다. 국가지정 난치병을 앓는 장녀(47)와 관련된 복지시설 관계자 약 20명을 초대했죠. 부부는 그동안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우리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미치코씨는 “우리 부부도 고령이 됐다”며 “지금 제대로 된 형태로 감사를 표하고, 딸 아이에 대한 변함없는 관계를 부탁하고 싶었다”고 생전장례 개최 이유를 밝혔습니다.
도쿄에 사는 50대 줄넘기 강사 사키다 루오씨도 최근 50세 생일을 맞아 갤러리 겸 바를 빌려 생전장례를 열었습니다. “모두 바빠서 그리운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장례식 정도”라는 그는 “그렇다면 조금 일찍 장례식을 열어 옛 인연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음식이 제공되는 파티 형식으로 열렸는데요. 약 120명이 참석한 이 자리를 통해 “인간관계가 다시 시작됐다”고 하죠.
日 성인 23% “긍정적” 평가
생전장례에 대한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장례업체 메모리드그룹과 조사회사 넥서가 2월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생전장례를 ‘직접 했다’와 ‘나중에 하고 싶다’는 응답이 4.3%였습니다. 생전장례 이미지에 대해서는 36%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장례’(14%),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작별의 장’(8.8%) 등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나타났습니다.
장례 의례에 정통한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야마다 신야 부관장은 “생전에 감사를 전하는 장이기도 했던 환갑잔치 등이 사라지는 가운데 등장한 것이 생전장례식”이라며 “인생 결산의 장으로 자유롭고 개성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장례문화학회의 무라타 마스미 부회장도 “인생 100년 시대라고 하는 지금, 생전장례에는 긴 인생을 일단 리셋하는 의미도 있다”며 앞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더 커질 것으로 봤습니다.
죽음의 준비? 긴 인생의 리셋!
몇 년 전 일본의 한 드라마에서 생전장을 치르는 장면을 보고 ‘기괴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요. 막상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죽음이 아닌, ‘살아가는 에너지’를 모으는 이 의식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굳이 ‘장례’라는 이름을 넣지 않아도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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