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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트럼프가 고마운 사람들

손철 산업부장

트럼프 일방주의 큰 혼란 야기했지만

차·조선·철강 등 적잖은 한국 기업들

'中 제조업 굴기에 제동' 반색 분위기

한미통상협상, 종합적인 국익 따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지진설’에 혼비백산해 있는 일본 열도를 이달 초 두 번이나 강타했다. 트럼프는 일본을 향해 “매우 버릇이 없다” “잘못 길들여졌다”고 말폭탄을 날렸는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첫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부의 정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공을 들인 걸 감안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 셈이다. 트럼프는 일본과 일곱 차례 무역협상에도 성과가 없자 직격탄을 날린 것이지만 이시바 총리 입장에서 보면 정권의 명운이 걸린 참의원 선거가 20일로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을 원하는 트럼프의 요구를 마냥 들어줄 수만은 없는 지경이다. 트럼프는 7일(현지 시간)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4월 초 발표한 24%보다 1%포인트 높인 25%로 통보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미일 통상협상이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갖고 진행 중일 수 있지만 트럼프의 일방주의와 무례함은 일본 국민 입장에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같은 날 한국에도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할 상호관세를 25%라고 알리며 한미 통상협상의 진전을 압박했는데 일단 관세율은 석 달 전과 바뀌진 않아 일본과 비교해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 싶다. 따지고 보면 상호관세 자체가 미국만 일방적으로 쌓는 보호무역 장벽이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송두리째 무시한 것인데 말이다.

트럼프의 ‘미치광이식’ 정책 도발은 국제정치와 무역만 흔들고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 스스로 “내전을 우려한다”고 할 만큼 미국 내부의 갈등은 확산 일로다. 과격한 불법 이민자 단속에 시민들이 저항하자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군대를 동원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한다고 최고 명문인 하버드대에 재정 지원을 단박에 끊어버렸다.



급기야 트럼프는 권한도 없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해고를 언급하며 밀어붙일 태세다. 파월 의장이 추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 때문에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가 애타게 원하는 금리 인하를 올 들어 한 차례도 단행하지 않고 있어서다. 파월이 트럼프에 항복해 잘못 금리를 내리면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 위험에 처하고 파월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 뉴욕 증시는 4500조 원의 시가총액이 단 하루에 증발한 4월 초의 악몽을 재연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하나라도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트럼프 같은 위정자를 향한 촛불은 들불이 되고, 의회와 사법부의 탄핵소추 대상이 됐을 것은 불보듯하다.

미국 안팎으로 트럼프의 일방주의와 변덕이 기승을 부리며 혼란을 초래하고 있지만 트럼프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이란 핵시설을 벙커버스터 12발로 날려버리는 걸 지켜본 이스라엘 국민만은 아니다. 적잖은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의 제조업 굴기에 족쇄를 채우려 하는 트럼프에게 환호하고 있다. 자동차·철강·조선·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서 중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 앞서나가는 선도자다.

트럼프가 집권 후 중국산 철강에 제일 먼저 고율 관세를 때리고 중국산 선박에 추가 수수료를 부과하려 하지 않았으면 국내 철강 업계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조선 업계는 지금 같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입성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트럼프 덕분에 한국의 전선·전력기기 업체들이 ‘슈퍼 호황’을 누리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 칼을 갈듯 중국이 ‘제조 2025’ 전략을 통해 키워낸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생산 능력이나 인공지능(AI), 반도체,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 제조업 경쟁력까지 고려하면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태클은 무자비할수록 고마울 뿐이다.

1%대로 추락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지렛대는 첨단 제조업에 있고 트럼프가 중국을 붙잡고 있는 지금이 한국의 첨단 제조업에 마지막 기회다. 트럼프 시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중국과 제조업 격차를 만들지 못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는 10년이 지나지 않아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애당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한미 통상협상의 결과는 한국에 불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비위를 맞출 때 얻는 이득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면서 종합적으로 국익을 따지는 안목이 정치권과 외교 통상 관료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절실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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