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위해 집 짓는 ‘업자’가 아니라 내 집을 짓는 ‘가장’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49세의 나이에 맨손으로 창업해 굴지의 중견 건설회사를 일군 이광래 우미건설 창업주 겸 회장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33년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1955년 사병으로 군에 입대한 뒤 장교 선발 시험과 교육 과정을 거쳐 경리병과 소위로 임관했다. 1973년 8월까지 복무하다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나이 쉰을 목전에 둔 1982년 우미그룹의 전신인 삼진개발을 설립하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광주에서 분양한 첫 주택인 ‘삼전맨션’의 규모는 단 18가구에 불과했다.
이후 이 회장은 1986년 사명을 우미건설로 바꾸고 대규모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늘 전국의 견본주택을 돌아다니며 현장 경영을 강조했다. 광주 남구 주월동에 800가구 규모의 라인광장아파트를 분양했고 1990년대에는 순천 연향지구 공동주택사업에도 진출했다. 1992년 3월 회장 취임 후 2000년대부터는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대도시에서 사업을 펼치며 사세를 확장했다. 지난해 우미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27위, 매출 규모는 연결 기준 2조 934억 원에 달한다. 자회사로 우미토건·우미산업개발·우미개발·우미글로벌·우미종합건설 등이 있다.
위기도 겪었다. 이 회장이 광주 서구에 1200가구의 공공임대 아파트 공사를 막 시작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이 회장은 사업을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목포에 3필지를 추가로 사들여 1500가구 완판에 성공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업가 면모를 보였다.
우미건설에 따르면 이 회장은 항상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는 철학으로 임직원들을 독려했고 돈을 벌기 위해 집 짓는 ‘업자’가 아니라 내 집을 짓는 ‘가장’의 마음을 강조했다. 또 정도·원칙 경영을 고수하며 협력 회사에 대한 자금 결제를 미루지 않았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2005년 성실납세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총 5회 성실납세 표창을 받았다.
2006년에는 사회 공헌 활동을 위해 금파재단(현 우미희망재단)을 설립했고 국가유공자 주거 개선 사업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회장은 2018년 ‘미션(존재 이유)과 비전(꿈), 핵심 가치(일하는 방식)’로 구성된 가치관 경영을 선포하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2019년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는 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2020년에는 서울 도곡동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선도적인 일류 종합 부동산 회사로의 도약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는 주택 사업과 건축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투자, 프롭테크 지분 확보, 해외 사업 투자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석준(우미글로벌 부회장), 차남 이석일, 장녀 이혜영(우미건설 건축디자인실 실장) 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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