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의원연맹 방미단의 주축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의원실의 보좌진은 방미단의 미국 현지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방미단의 현지 일정을 촘촘하게 조율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지한파 의원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각 산업 품목별 전문성을 갖춘 상하원 의원들과 접촉하는 게 목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입김이 통하는 이른바 ‘실세’ 의원을 만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보좌진 A 씨는 10일 “최대 현안인 통상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현지에서도 계속 일정을 조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달 16일 예정된 기업 간담회에 전달할 애로 사항과 주요 이슈를 분석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간담회에 참여하는 한 기업의 임원은 “미 의회에 한국 기업의 입장을 전달하는 창구가 돼 주겠다는 (한미의원연맹의) 설명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방미단은 이번 기업 간담회를 비공개로 개최한다. 참석 기업도 각 품목별 대표 기업 소수만으로 한정했다. 한미의원연맹 관계자는 “더욱 심도 있게 이야기를 듣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미의원연맹의 이번 방미 일정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중심으로 이뤄졌던 해외 기업 활동 지원에 국회가 가세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방미단은 20일 출국해 5박 7일간 미국 현지에서 상하원 의원들과 접점을 확보하면서 한미 경제협력과 국내 기업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각국이 첨단기술 확보 경쟁에 돌입하면서 관련 기업의 수출 활동은 경제안보 성격을 띤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국 산업을 지키려는 각 나라들이 규제와 진흥책을 전략적으로 섞어 사용하는 상황에서 입법 과정에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는 것은 기업 생존에 사활적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미 의회의 지한파 모임인 ‘코리아코커스’처럼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갖춘 단체가 국회에서 역할을 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방미 활동과 관련해 여야 의원들은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국내에서는 정쟁으로 대치하지만 “국익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세 위기에 허덕이는 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번 방미단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과 국민의힘 의원 5명, 조국혁신당 의원 1명이 포함됐다. 미국 정치권 인맥이 넓은 민주당 조정식·김영배 의원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던 나경원·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정보기술(IT) 전문가로 첨단기술계에서 네트워크를 갖춘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등 면면도 다양하다.
이번 방미단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규모를 최소화했지만 한미의원연맹에 속한 의원만 160명을 넘을 정도로 인재 풀이 풍부하다. 지금껏 해외 의회를 상대로 한 의원 모임들은 주로 상대국 의회와의 정치적 우호 증진 등 정무적 역할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3월 설립된 한미의원연맹은 이 같은 경향을 넘어 더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커진다는 반응이다.
경제계에서는 ‘의원 외교’를 통한 해외 사업 불확실성 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정부나 의회에 직접 의견을 전달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정말 큰 대기업들은 로비 자금을 써가면서 그나마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외교부나 무역협회 등 유관 기관의 간접 지원에만 기대는 처지”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의회 외교 활동에 대한 현장의 기대치도 높다. 경제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의 일부 보좌관들이 기업 관계자들과 미국에서 네트워크 활동을 동행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각 기업에서는 “비슷한 일정을 또 만들 수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각 상임위를 중심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세밀하게 들을 수 있는 데다 입법을 매개로 상호 간 호혜적인 관계를 맺기도 유리하다. 격식을 갖춘 정부 간 대화보다 오히려 효율적이면서 속도감 있는 협상이 가능할 수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 이슈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문제지만 결국 현실화하려면 법률로 만들어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관세나 통상 문제에서 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대응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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