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북쪽으로 약 90km 떨어진 앤트림 카운티의 포트러시는 인구 약 6000명에 불과한 해안가 작은 휴양 도시다. 하지만 2019년 이곳의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디 오픈이 열렸을 때 약 24만 명의 갤러리가 몰렸다.
포트러시 인근에는 유명 관광지도 많다. 그 중 대략 5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4만여 개의 육각형 주상절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매년 6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아일랜드의 거인 핀 맥쿨에게 스코틀랜드의 거인 벤안도너가 도전을 신청했다. 그러자 핀 맥쿨이 노스 해협을 건너기 위해 커다란 돌을 놨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상절리에는 자이언츠 코즈웨이(거인의 둑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근에는 사진작가들에게 꿈의 장소로 여겨지는 발린토이 항구와 아찔한 절벽 사이에 놓인 로프 다리가 유명한 캐릭어리드, 거대한 너도밤나무가 양쪽으로 빼곡하게 뻗어 있어 마치 숲의 정령이 살 것 같은 다크 헤지스, 무성한 숲과 크고 작은 폭포로 유명한 글렌나리프 공원 등이 있다. 이 장소들은 2019년 시리즈를 마무리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주요 무대이기도 했다.
로열 포트러시가 처음 문을 연 건 1888년이다. 당시엔 9홀이었다. 이름은 ‘더 컨트리클럽’이었는데 1892년 왕실의 후원을 받으면서 로열 컨트리클럽으로 바뀌었다. 3년 후인 1895년엔 오늘날의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이 됐다. 현재 로열 포트러시에는 각각 18홀인 밸리와 던루스 링크스가 있다. 디 오픈이 열리는 코스는 던루스다. 인근 해안 절벽 위 오래된 성(城)인 던루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13세기에 바이킹족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던루스 성은 현재 곳곳이 무너져 내려 뼈대만 앙상하다. 고성(古城)이 골프코스로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해안가 황량하고 장대한 모래 지대에 들어선 던루스 링크스에선 거친 바닷바람이 라운드 동반자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순식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등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 멀리 던루스 성이 보이는 5번 홀(파4)과 오르막이 쭉 이어진 7번 홀(파5)은 장엄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막판 16번(파3)과 17번 홀(파4)은 승부의 갈림길이다. 236야드의 16번 홀은 거리 부담이 큰 데다 한쪽은 낭떠러지다. 흔히 ‘재앙의 코너’로 불린다. 17번 홀의 별칭은 죽은 이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해 불로써 단련 받는 곳이라는 의미의 ‘연옥’이다. 그린 주변 벙커가 위협적이다.
로열 포트러시에서 디 오픈이 처음 열린 건 1951년이다. 디 오픈이 그레이트 브리튼 섬을 떠난 건 이때가 최초였다. 이후 로열 포트러시에선 한동안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북아일랜드 신·구교 갈등으로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으로 안정을 되찾자 다시 로열 포트러시에서 대회가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로열 포트러시에서 디 오픈이 두 번째로 열리게 된 데에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대런 클라크, 그레임 맥다월, 로리 매킬로이의 역할이 컸다. 포트러시가 고향인 맥다월은 2010년 US 오픈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클라크와 매킬로이가 디 오픈과 US 오픈을 연달아 제패했다. 이들이 R&A를 설득했다.
매킬로이는 16세이던 2005년 61타를 치며 로열 포트러시 코스 레코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디 오픈 때는 첫날 1번 홀에서 OB(아웃오브바운즈)를 두 방이나 냈다. 첫 홀부터 4오버파를 친 매킬로이는 결국 컷 통과에 실패했다. 대신 아일랜드의 셰인 라우리가 잉글랜드의 토미 플리트우드를 6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디 오픈이 로열 포트러시에서 처음 열린 이후 두 번째 개최까지는 68년이 걸렸다. 세 번째 열리는 데는 6년이면 충분했다. 올해 7월에도 스코티 셰플러(미국), 매킬로이 등 전 세계 최정상 골퍼들이 우승컵 ‘클라레 저그’를 놓고 뜨거운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불의 땅’에서 벌어지는 거인들의 혈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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