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암과 희귀질환 발생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ATM 유전자의 돌연변이 전체를 분석하고 일부 변이의 위해성을 포함한 기능을 규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은 김형범 연세대의대 약리학교실 교수 연구팀이 암과 희귀질환 발생과 관련이 있는 ATM 유전자의 단일 염기 변이 2만 7513개를 전수 평가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18일 밝혔다.
ATM 유전자는 체내에서 DNA 손상을 감지하고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유방암·대장암·췌장암 등이 발생할 위험이 크고 암환자의 예후도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운동실조-모세혈관 확장증' 등 특정 희귀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주로 1~4세 사이에 발현되는 운동실조-모세혈관 확장증은 자발적인 운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점차 손상되고 영구적으로 모세혈관이 확장돼 점막과 피부에 붉은 병변이 생기는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머리카락이 빠르게 노화되거나 내분비 이상으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 당뇨병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백혈병, 림프종 등과 같은 암이 발생할 위험도 높다. 의료계에서는 ATM 유전자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변이를 발굴하면 해당 변이를 가진 건강한 일반인의 암 또는 희귀질환 발병 위험과 환자의 치료 예후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ATM 유전자는 약 9000개의 단백질 염기서열을 가진 데다 변이 종류가 많아 기존의 유전체 분석 기술이나 통계 방법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워 실제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연구팀은 최신 유전자 편집 기술인 '프라임 에디팅'과 인공지능(AI) 모델을 활용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했다. ATM 유전자의 전체 단백질 코딩 부위인 62개 엑손에서 발생 가능한 2만7513개의 단일 염기 중 2만 392개는 프라임 에디팅을 이용한 세포 실험으로 기능을 직접 확인했다. 나머지 4421개의 변이는 실험적으로 평가가 어려워 연구팀이 직접 개발한 AI 모델 '딥ATM'을 이용해 세포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했다. 그 결과 ATM 유전자의 기능을 훼손할 수 있는 해로운 변이와 그렇지 않은 변이를 높은 정확도로 구분해낼 수 있었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가 보유한 약 50만 명의 유전체 및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ATM 유전자 기능 평가 결과를 검증했다. 그 결과 연구에서 구분한 해로운 변이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걸릴 위험이 약 1.4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국제 유전자 변이 데이터베이스인 클린바(ClinVar)의 데이터와 기존 암 유전체 데이터(cBioPortal) 자료를 활용한 추가 검증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연구팀은 향후 ATM 외에 다른 유전자에서도 유사한 분석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해석이 어려운 ATM 유전자의 변이를 대규모로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유전체 기반의 정밀의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Cell)’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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