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가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 특정 산업 육성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지방정부 당국자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제 살 깎아 먹기’식 출혈 경쟁을 유발하는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를 질타한 발언으로, 이를 지렛대 삼아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달 14~15일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전국의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앙도시공작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각 지방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항상 AI와 컴퓨팅 파워, 신에너지 차량 등 몇 가지 분야에만 국한된다”며 “전국 모든 성(省)이 꼭 특정 분야의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시 주석이 공개 석상에서 지방정부 당국자들을 질타한 셈이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의 발언은) 자국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외국과 통상 마찰을 불러오는 과잉생산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업계는 재고를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중국 자동차딜러협회에 따르면 비야디(BYD)는 올 5월 기준 업계 전체 평균(1.38개월)보다 2.5배가량 많은 3.21개월 분량의 재고를 쌓아두고 있다. BYD가 22개 차종을 대상으로 최대 34%의 ‘폭탄 세일’에 나선 배경이다. 중소 제조 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장조사 업체 가스구에 따르면 중국 내 70여 개의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85%에 달하는 공장의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인 7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AI 분야도 마찬가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관영 과학기술일보는 중국 전역의 AI 컴퓨팅 용량 가운데 실제 사용되는 것은 3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과기일보는 “막대한 유휴 자원이 활성화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과잉생산은 글로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중국에서 몰려드는 ‘땡처리’ 물량 공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저가 물량으로 각국이 초긴장 상태”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시 주석의 공개 발언 이틀 뒤인 16일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전기차 등) 신에너지차 영역에서 나타난 각종 비이성적인 경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 질서를 실질적으로 규범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과잉생산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중국 지도부가 인위적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과잉생산이 심각한 태양광 업계에서는 이미 구조조정설이 돌고 있다. 리러청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장은 이달 초 태양광 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행사에서 “후진 생산능력의 ‘질서 있는 퇴출’을 장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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