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뮤지컬 최초로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 현지 프로덕션으로 장기공연을 하며 K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준 ‘마리 퀴리’가 더욱 선명한 주제의식을 살린 무대와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재단장해 돌아왔다. 이 작품은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시대 정신에 맞는 상상력을 더해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스테디셀러 작품으로 자리잡으며 올해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작품은 죽음을 앞둔 마리가 딸 이렌에게 세상에 남길 마지막 종이를 건네면서 시작된다. 폴란드 출신으로 파리에 유학을 온 그는 1903년 프랑스 최초로 여성 박사학위자가 되고 이후 잇달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여성 최초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삶의 마지막에서는 영광이 아닌 회한과 후회 등으로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반전을 선사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후 본격적으로 마리가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운명의 친구 안느를 만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고 차별을 견디며 연구에 매진하는 마리의 삶을 펼친다. 특히 1막에서는 남편 피에르가 왜 과학을 하냐고 묻는데, 마리의 대답에서 그가 겪었던 여성, 이민자에 대한 편견 그리고 이에 당당히 맞섰던 강인함이 그대로 전해져 뭉클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궁금하니까.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그걸 실험이라고, 과학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안에선 내가 누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합니다.”
마침내 마리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한 ‘라듐’을 발견하면서 환희에 젖는다. 밝게 빛난다는 의미의 라듐은 마리의 또 다른 이름이자 은유다. 시종일관 어두운 무대에서 마리가 푸른 조명을 받으며 푸르게 빛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찬란하게 빛났던 마리가 라듐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좌절하며 스러지는 1막의 마지막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희망, 열정, 절망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서사와 감정이 집약돼 폭발하는 감동을 선사하는 엔딩 넘버를 부른 옥주현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드라마틱하게 완성해 벅찬 감동과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막에서는 자신이 발견한 라듐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고 안느가 사라져 버린 이유일 수 있다며 자책하는 마리의 모습이 고통스럽게 펼쳐진다. 퀴리 부부는 라듐을 독점하지 않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후 라듐은 립스틱, 치약 등에 이용되며 흡족해하지만 이것도 잠시. 라듐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방사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안느가 일하던 라듐 시계 고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마리는 사인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이들의 사인은 당시 알려졌던 매독이 아닌 바로 라듐 때문이었던 것.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 마리는 점점 고통스러워한다.
‘마리 퀴리’는 이처럼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영예로운 모습이 아닌 안느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 시키면서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보여주며 깊은 여운과 메시지를 선사하다. 어떤 분야보다 가치중립적일 것 같은 과학에서조차 과학자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자책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마도 이 작품은 스테디셀러가 되고 해외에서도 공감을 이끌어 내며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마리 역에는 옥주현 외에도 김소향, 박혜나, 김려원이, 안느 역은 강혜인, 이봄소리, 전민지, 피에르 퀴리 역은 테이, 차윤해가 캐스팅됐다. 10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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