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연준은 또 10월 28~29일과 12월 9~10일 등 올해 남은 두 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총 0.50%포인트 더 내릴 수 있음을 시사해 지난 6월 전망치보다 인하폭을 한 단계 넓혔다. 표면적으로는 금융 시장의 기대에 완전히 부응한 셈이지만 월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이어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파월 의장은 현 미국 경제가 나쁜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이번 금리 인하가 경기 침체 위험에 대한 보험 성격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올해 말과 내년까지 계속 누적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사실상 미국 경제에 고용 시장 악화를 포함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이 잠재해 있음을 암시했다. 관세 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 탓에 앞으로 나올 경기 지표에 따라 FOMC 회의 때마다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이번 FOMC 회의에서는 위원들 사이에서도 금리와 고용, 경기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이 드러나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연준 장악 시도에 따라 금리 결정 흐름이 요동 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연준, 9개월만에 0.25%포인트 ‘컷’…연내 2차례 더 인하 예고
17일(현지 시간) 연준은 FOMC 회의를 마친 뒤 미국의 기준금리를 기존 4.25∼4.50%에서 4.00∼4.25%로 0.2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올 1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로는 첫 금리 인하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지난 7월까지 5번 연속 동결 행진을 이어왔다. 연준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2.50%)과 미국 간 금리차는 상단 기준 1.75%포인트로 좁혀졌다.
연준은 FOMC 발표문에서 “올해 상반기에 경제 활동의 성장이 완화됐다”며 “일자리 증가세는 둔화됐고 실업률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은 상승했고 다소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아 연준은 양측(고용과 물가)에 대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연준은 또 올해 말 기준금리 예상치의 중간값을 3.6%로 제시했다. 10월 28~29일과 12월 9~10일 FOMC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총 0.50%포인트 더 내릴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연준은 지난 6월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점으로 표시해 분기마다 발표하는 표)에서는 기준금리 예상치의 중간값을 3.9%로 제시해 올 하반기 0.25%포인트씩 두 차례 금리 인하를 전망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 폭을 0.25%포인트 더 늘렸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지난 6월 1.4%에서 1.6%로 상향 조정했다.
연준은 “최대 고용을 지원하고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리기 위해 강력히 노력하고 있다”며 “통화정책의 적절한 기조를 평가할 때 노동 시장 상황, 인플레이션 압력과 기대치, 금융·국제 발전에 대한 수치 등의 정보가 경제 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감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월 “금리인하는 위기관리 차원, 고용·인플레 위험”…증시는 혼조
연준이 기다리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는 소식에도 미국 뉴욕의 3대 증시는 혼조로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57% 오르는 데 그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종합지수는 외려 각각 0.10%, 0.33% 떨어졌다.
증시가 혼선을 보인 데에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파월 의장은 이날 FOMC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인하가 고용 하방 위험에 대응하는 보험 성격의 조치인가, 침체가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한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위험 관리 차원의 인하(a risk management cut)로 볼 수 있다”며 “경제전망예측(SEP)을 보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은 조금 올라갔고 물가와 실업률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파월 의장은 “고용의 하방 위험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위험과 고용 위험 간) 균형이 바뀌었다”며 “우리는 잠재적인 경제 상황 전개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섰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현 고용시장 상황에 대해서는 “이민자 변화 만큼 노동 공급이 감소하고 있다”며 “노동 공급 증가가 거의 없는 가운데 고용 수요도 급격히 줄고 있어 앞서 내가 ‘기묘한 균형(curious balance)’이라고 불렀던 현상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2일 연준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미팅) 연설 때도 “노동시장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 모두의 현저한 둔화에서 비롯된 기묘한 균형 상태”라며 “이러한 이례적 상황은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실업률이 (8월) 4.3%이고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1.5%라고 하지만, 경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It's not a bad economy)”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는 남았다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은 “상품 가격 상승이 올해 인플레이션 상승의 대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이는 매우 큰 효과는 아니지만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 지속해서 누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관세 정책에 대해 “관세를 수출업자들이 지불하지 않고 대부분 이들과 소비자 사이에 있는 회사들이 지불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비용을 전가할 의도가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전가가 예상보다 더 느리고 작았지만 일부 전가가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마이런 홀로 ‘빅컷’ 투표…연준 내부 분열 조짐에 금리 향방 불확실
월가에서는 연준이 이번 FOMC 회의에서 제시한 금리 방향성을 두고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장악 시도가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 지명 인사들과 나머지 위원들 간 인식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FOMC 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하고 전날 취임한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가 중립성 논란에도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에 홀로 투표해 눈길을 끌었다. 마이런 이사를 제외하면 빅컷에 표를 던진 위원은 아무도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설계자’로 알려진 마이런 이사는 지난 4일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 때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자리를 겸직한 채 연준 직위를 유지하겠다고 해 논란에 선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FOMC 회의 직전까지도 “빅컷이 있을 것”이라고 연준을 압박한 점을 감안하면 임명권자의 의중에 충실한 투표를 한 셈이 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7월 30일 FOMC 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미셸 보먼 부의장과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만 금리 동결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 뒷말이 나왔다. 연준 이사 2명이 동시에 금리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은 지난 1993년 이후 3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모든 위원들이 금리 인하에 투표한 까닭에 이들의 존재감이 눈에 크게 띄지는 않았다. 이날은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임을 통보받았던 리사 쿡 연준 이사도 지난 15일 항소법원 승소에 힘입어 회의에 참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내년 5월 임기가 종료되는 파월 의장 후임 후보군으로 보먼 부의장, 월러 이사 등 11명의 인사를 검토하고 있다.
9월 금리 인하뿐 아니라 장기 금리 전망과 관련해서도 연준 내 의견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전체 연준 위원 19명 가운데 12명이 연내 추가 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이 가운데 연말까지 0.25%포인트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2명이었고, 0.50%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상한 이는 9명이었다. 연말 2.75%∼3.00%의 금리를 예상해 앞으로 추가로 1.25%포인트나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한 사람도 1명 있었다. 연말 기준금리가 현 수준과 같거나 높을 것이라 전망한 위원도 7명이나 됐다.
내년 말 금리 전망 분포도 2.75∼3.75%로 넓게 분산됐다. 2026년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4%로 올해 말보다 겨우 0.2%포인트 낮았다. 바꿔 말하면 위원들이 내년에는 연준이 겨우 한 번만 금리를 인하할 것 같다고 예상한다는 뜻이다. 이는 시장 기대치와 거리가 먼 수준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0.5%포인트 인하에 대해 폭넓은 지지가 전혀 없었다”며 “지난 5년간 매우 큰 폭의 금리 인상과 인하를 단행한 적은 있지만 이는 정책 방향이 잘못돼 신속한 전환이 필요할 때고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 정책은 계속 변화하고 있어 경제에 미칠 영향이 불확실하고 올 들어 우리의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했다”며 “우리는 어떤 것에도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우리가 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점으로 표시해 분기마다 발표하는 표) 분산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회의마다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당분간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과 고용·물가 지표, 연준 구성원 변화에 따라 금리가 통상적인 시장 원리에 따라 오르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음을 파월 의장도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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