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자살률이 전국 평균 이하입니다. 인구만큼이나 자살 예방을 위한 인프라 역시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죠. 자살률을 낮추려면 이러한 지역별 격차와 편차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24일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자살 예방 정책 환경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21년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합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 자살예방정책지원기관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황 이사장은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돼 5년째 재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수도권에 편중된 자살 예방 인프라를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따지는 자살률은 인구 감소·소멸 지역일수록 높아지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시의 자살률은 전국 평균 이하인 반면 이른바 ‘자살 벨트’로 불리는 강원과 충청 지역의 자살률은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서울시와 경기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각각 19.0명, 21.2명인 반면 충북 29.4명, 충남 28.6명, 강원은 26.0명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이에 대해 황 이사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인력·예산 등 모든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일부 지역은 자살 예방 업무를 보건소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관련 인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가의 자살 예방 정책이 전문가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률(추정치)은 인구 10만 명당 28.3명으로 2013년(28.5명)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에 자살예방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2034년까지 자살률을 40%가량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황 이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일시적으로 줄어든 자살률이 다시 급증할 것으로 예견됐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 연예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상반기 40~50대 가장들의 모방 자살이 증가한 원인이 크다”면서도 “경제·사회 등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황 이사장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자살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자살률을 살펴보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 대란,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때마다 급증했다. 그는 “그동안 자살률은 실업률이나 고용률 같은 경제지표와 연동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을 보여왔다”며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정신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살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족을 상대로 심리상담을 해보니 자살 사망자의 90% 이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가족 등 주변에 말이나 행동으로 일종의 경고신호를 보내지만 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황 이사장은 “사전에 자살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에도 절반가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의 작은 관심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반복적인 외침에도 아직 우리의 노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임기 중 눈에 띄게 자살률이 낮아지는 것을 보는 게 목표라는 그는 자살 예방 교육 의무 대상자를 전 국민으로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황 이사장은 “물놀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초등학생 생존수영 교육을 의무화했듯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식별해 전문기관과 연결시키는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는다면 미래 세대인 청소년 스스로의 정신건강은 물론 우리 주변, 더 나아가 국가의 자살률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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