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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징벌적 과징금, 진짜 효과 내려면

보안·산재·증시·가짜뉴스 등에 징벌적 손배

새 정부, 형벌 보다 재산상 책임 강화 방향

자칫 "돈으로 해결" 왜곡된 인식 경계 필요

구조적 원인 파악 재발 방지책 병행돼야  





요즘 건설사 관계자를 만나보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혹시 다칠까 밤잠까지 설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연간 3명 이상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5%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정부 대책 때문이다. 산재를 줄이자는 정책 방향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자칫 기업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벌금은 지나친 게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징벌적 과징금. 새 정부 출범 이후 해킹·산재·주가조작·가짜뉴스 등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사건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징벌적 과징금은 가해자가 고의적·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했을 때 입증된 손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피해자 보상과 재발 방지를 동시에 노린 장치다. 우리나라에는 2011년 하도급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돼 기술자료 부당 요구 시 최대 세 배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이후 공정거래법·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마다 확대 적용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는 새 정부가 형벌보다는 징벌적 과징금 등 재산상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실질적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기로 방향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297만 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롯데카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 당국은 해킹 피해를 일으킨 금융사의 경우 매출액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사회적 타살’로 규정한 산재 대책에서도 사망 사고가 잦은 기업에 영업이익의 5% 이내 과징금을 물린다. 여당은 3명 이상 근로자가 동시에 사망하면 최대 1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주가조작 세력에는 물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언론사·유튜브 등도 징벌적 배상의 주요 타깃이 됐다.

정치권과 당국은 미국처럼 수조 원대 배상 판결로 기업 문화를 바꾼 사례를 참고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담배회사, 제약사, 정보기술(IT) 기업이 거액 배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경우도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만큼 강력한 제재 수단도 드문 게 사실이다.



다만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확대하는 데 있어서 정부의 좀 더 세심한 자세가 필요하다.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경우 사고가 터지면 구조적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보다 우선 과징금 대책부터 내놓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보상 강화라는 명분은 그럴듯해도 제도가 남발되면 본래 의도인 ‘징벌’ 의미가 희석될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통신과 금융 등 분야에서 해킹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 이는 곧 막대한 소비자 피해 발생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신뢰를 져버린 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해킹 등 고의적·반복적 불법행위에는 그에 걸맞은 행정 및 금전적 제재를 통해 사회적 경종을 강하게 울려야 한다. 다만,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당국이 조건 반사적으로 징벌적 과징금부터 들고 나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징금이 필수 해결책으로 오인되는 순간 실효성은 떨어지고 기업들은 비용을 사회적 책임 회피의 핑계로 전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과징금 액수를 높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사고의 성격과 원인을 진단하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구조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정보보호 체계 강화, 산업안전 관리 혁신,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 등 맞춤형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재발 방지 대책을 설계할 때는 기업의 자율적 책임 강화와 함께 제도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징벌적 과징금이 실질적 처벌 및 예방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고를 계기로 사회가 무엇을 배우고 제도를 어떻게 고쳐 나가느냐다. 징벌적 과징금은 언뜻 강력해 보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부는 구조적 원인을 짚어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지키고 국민 안전과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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