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무실 수요가 급증하며 웃돈까지 붙어 거래되던 지식산업센터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수요가 줄어 마이너스 프리미엄에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도금·잔금 대출까지 어려워지면서 수분양자 일부는 매매대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위장 파산’ 행위까지 하는 상황이다. 수도권에 건설 중인 지식산업센터 4곳 중 1곳은 신탁사가 맡고 있어 신탁사의 비주택 사업장 부실 위험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3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지식산업센터가 잔금대출이 축소되고 중도금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고사 위기에 놓였다. 자칫하면 지산 발(發) 부동산 시장 위기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산업단지공단의 자료를 보면 올해 8월 말 기준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1193개소 중 약 19%에 달하는 225개소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았거나 건설 중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서울에 국한해도 395개소의 지식산업센터 중 71개소가 미착공 또는 공사 중이다. 다섯 곳 중 한 곳이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가운데 금융감독원의 대출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이미 계약한 수분양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분양 담보대출이 중단되면서 분양률이 낮은 사업장의 계약자는 계약금 10% 외에 나머지 90% 대금을 자기자본으로 납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 시행사의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은 통상 사업장을 담보로 실행됐는데 최근에는 개인 신용까지 반영하는 것으로 대출 기준이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자금이 원활히 돌지 않고 있다”며 “금융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행사와 시공사 모두 도미노 파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이 얼어붙자 분양권 계약을 취소하기 원하는 수분양자들 사이에서는 중도금과 잔금을 내지 않기 위해 개인 파산으로 위장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입주가 시작된 지식산업센터 계약자가 중도금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연체이자에다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는 신용불량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 지식산업센터의 한 분양자는 “입주가 시작되면 잔금은 계약자 담보대출(LTV)로 전환되는데 공실증가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으로 은행이 대출을 갑자기 막으면서 계약자들은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고 토로했다.
잔금대출 축소·전면 중단은 전국 모든 지식산업센터에 적용되고 있고 대출 재개 움직임도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공실 비율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경매 시장에 나와도 지식산업센터를 매수하려는 분위기가 앞으로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경매 시장에 나온 지식산업센터 매물 수는 2022년 이후 3년 연속 증가 추세다. 2022년 경매가 진행된 지식산업센터 매물 건수는 403건이었으나 2023년 688건으로 늘어난 이후 지난해에는 1564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에는 이달 말 기준으로 이미 경매 시장에 나온 지식산업센터 매물이 2593건에 달한다. 매물이 늘어나며 경매 낙찰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22년 88.7%였던 낙찰가율은 2023년 71.2%로 하락한 후 지난해 65.8%로 떨어졌다가 올해에는 현재 57.7%로 반 토막이 났다.
지식산업센터 발 신탁사 위기론도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수도권에 건설 중인 225곳 중 한국자산신탁, 무궁화신탁, 신한자산신탁 등 신탁사가 맡은 곳이 54곳(24%)으로 4곳 중 1곳에 달한다. 계약자들이 돈을 내지 못하면 신탁사들의 비주택 책임준공 사업장 부실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에 산업활동 목적으로 지식산업센터를 계약한 중소·중견기업의 잔금대출 비율은 원래대로 70~80%선으로 올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탁사의 한 관계자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대규모 공실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대출을 막으면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센터는 제조업과 지식산업, 정보통신업 등의 사업장과 그 지원시설 등이 입주할 수 있는 3층 이상의 건물이다. 저금리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던 시절 각종 규제가 주택에 집중되자 이를 대체하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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