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시스대는 자기 존엄과 긍지가 없고 상처 받고 바스러지기 쉬운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라는 물을 촉촉히 뿌려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서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죠. 그런데 양극화 심화로 노숙인도 다양해졌는데 오래전 기업 후원이 끊기는 등 재정 자립이 안돼 더 많은 이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게 참 아쉽습니다.”
박한용 성프란시스대 교수는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숙인들은 약간의 말에도 상처를 받고 바짝 마른 볏단처럼 조금만 만져도 부서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고려대 사학과 박사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년간 꾸준히 노숙인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성프란시스대는 대한성공회에서 2005년 9월 20명의 노숙인을 뽑아 1년 과정으로 주 4회 글쓰기·문학·철학·예술·한국사를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교수와 자원활동가는 저녁 수업 전 노숙인들과 함께 밥상공동체 개념으로 같이 식사하고 상호 선생이라고 칭한다. 그만큼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노숙인들의 자존감과 자활을 북돋기 위해 애쓴다. 고인이 된 졸업생을 위해 연간 몇 번씩 학교에 빈소도 차려 노숙인들로부터 “우리를 위해 울어줄 사람도 있다”는 말도 듣는다.
박 교수는 우선 “‘노숙자라고 불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묻자 이들이 ‘우린 가정이 해체돼 버림받은 처지’라고 답하더라”며 “노숙인의 고통과 외로움·자포자기의 저변에 하우스리스가 아닌 홈리스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홈리스로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실제 노숙인들은 서울역 등 길거리에서 숙식하는 사례는 10~20%대에 그치고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서북병원, 결핵치료센터, 알코올치료센터 등의 시설이나 쪽방·찜질방·독서실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 재학 시절 야학을 했던 박 교수는 “‘노숙인이 먹고사는 게 급하지, 인문학이 밥 먹여주느냐’는 지적도 있다”며 “하지만 정신적으로 풍요해지는 인문학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입학·수료식 사진을 대조해보면 노숙인의 표정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성프란시스대가 올해 16~20기생의 글을 모아 펴낸 ‘서울역 눈사람’을 보면 이들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앞서 빈민사목 활동을 하던 임영인 신부가 노숙인에게 밥만 줘서는 변화가 없자 미국의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를 참고해 성프란시스대를 만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 코스는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얼 쇼리스(1936∼2012년)가 1995년 미국 뉴욕에서 노숙인·마약중독자·재소자·전과자 등을 위해 만들었다.
요즘 양극화 심화로 노숙인 계층도 상당히 분화됐다. 성프란시스대의 경우 과정당 대졸자가 한두 명씩 있는데 서울대 출신도 있을 정도이고 20~30대, 중소기업·자영업 파산자,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 출신, 주민등록 미등록자 등 다양하다. 초기에는 못 배우고 가난하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려 무작정 상경한 경우가 많았고 1~2명씩 문맹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박 교수는 “너무나 아픔이 큰 노숙인들은 좀처럼 누구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김밥에 사이다 들고 경복궁이나 덕수궁 갑시다’ 식으로 야외 수업이나 역사 유적 탐방을 가면 학생이자 시민의 일원으로 만끽한다. 문화 행사, 수련회, 졸업 여행을 갖는 게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인문학을 통해 노숙인의 처절한 외로움과 무너진 자존감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졸업생 가운데는 ‘빗물 그 바아압’이라는 시집을 낸 최초의 ‘거리의 시인’ 권일혁 씨를 비롯해 사회복지사·소방공무원·택시기사로 변신한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학기 중에 쓰레기 줍기 등 자활 근로가 끊어질 경우 불안 증세 등으로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노숙인 인문학 과정의 전문성 제고와 졸업 후 프로그램, 일자리 불안정성 해소, 후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노숙인에 대한 관심은 높다”며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울시에서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5군데로 나뉘어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성프란시스대의 노하우를 존중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성프란시스대가 서울 다시서기센터에서 연 3000만 원가량을 지원 받고 월 300만 원 정도의 민간 후원이 들어오지만 오래전 기업 후원이 끊기는 등 재정 악화로 이제는 교수 모집이나 학생 정원 채우기도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심지어 다시서기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비영리 대한성공회유지재단의 경우에도 일부의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는 정황이 눈에 띈다. 박 교수는 이어 “졸업생들은 시설로 가거나 서울역 등 거리를 고수하거나 나뉘지만 모두 취로사업을 지속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며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이 예산과 대상을 크게 줄였는데 다시 늘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저도 허름하게 입고 다니다 보니 일부에서 ‘노숙인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고 무료급식소에 이끌려간 적도 있다”며 “사회구조적 문제가 결합된 노숙인 이슈에 관해 다같이 관심을 뒀으면 한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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