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法句經)은 부처님의 말씀을 시(詩) 형태로 정리한 대표적인 불경으로 ‘가장 흔하면서 어려운 경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법구경은 각 장마다 16~17개의 게송(시구절)이 수록돼 구절 수로는 총 423개에 달한다. ‘벤처 창업 1세대’인 남민우 다산그룹 회장이 최근 이 법구경 편역본을 출간했다. 23일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남 회장은 “우연히 접한 법구경에서 공감대를 발견해 여러 해에 걸쳐 공부했고 주변인들과 나눠보고 싶어서 책으로 정리를 하게 됐다”며 “3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 나름의 해석을 가미한 결과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남 회장은 한글 번역본이 아닌 팔리어 원전과 영어 번역본을 직접 번역하고 배경 설명까지 달아 총 332쪽으로 풀어냈다. 불교 신도가 아니라 무신론자라는 그는 기업가로서 불교 경전을 통해 얻은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골프를 칠 때 몸에 힘을 빼고 쳐야 잘 맞는 것처럼 기업 경영도 너무 목표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게 바로 동양 고전에서 공통적으로 전하는 물 흐르듯이 수시로 변하는 경영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삶의 자세”라고 답했다.
남 회장은 법구경 속 가장 핵심적인 구절로 ‘탐진치(貪瞋癡)’를 꼽았다. 불교 용어인 탐진치는 중생을 고통에 빠뜨리는 탐욕(貪)·분노(瞋)·어리석음(痴)을 말하며 이를 인간의 괴로움의 근원인 삼독(三毒)이라 부른다. 그는 “되도록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라는 의미”라며 “그렇게 되면 각자가 나만의 열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몇 년간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감정 기복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해졌다”고 덧붙였다.
남 회장은 1993년 창업한 네트워크 장비 개발 업체 다사기연을 모태로 다산그룹을 일궈냈다. 다산그룹은 현재 17개 계열사와 2000명의 직원, 매출액 80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30여 년간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인터넷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정보기술(IT) 업황 부진을 겪으며 10년간 어렵게 키워온 해외 계열사가 파산하는 등 숱한 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동양 고전이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됐다는 남 회장은 ‘법구경’과 함께 ‘도덕경’의 일독을 권했다. 그는 2019년 ‘도덕경’ 번역본을 펴냈고 2023년 다산그룹 창립 30주년을 기념한 자서전에 부록으로 싣기도 했다. 남 회장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매출과 이익의 극대화가 경영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평소 주변 기업인들에게 마음 수양을 하라고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산그룹은 최근 업황 부진에도 주력 사업 외에 플랜트,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자회사 디티에스(DTS)의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남 회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는 창업 정신을 이어나가겠다”며 “규모의 확장보다는 신규 사업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도전한 벤처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설립자이기도 한 남 회장은 내년 초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책 ‘닥치고 창업’을 출간할 계획이다. 평소 ‘창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위대한 창조자’라는 지론을 펼쳐온 그는 청년들에게 어려울수록 더 적극적으로 창업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만일 당신이 인생 역전을 꿈꾼다면 창업에 도전해야 합니다.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창업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놓을 것입니다. 도전이 없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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