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분쟁 해결, 베네수엘라 경제 제재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종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4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으로 군사·경제 국력 소모가 심각한 상황에서 종전의 필요성은 모두 느끼고 있는 까닭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미국의 중재로 내놓은 20개 항목의 종전안 가운데 한두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비쳤다. 관건은 여전히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점령한 땅의 이양 여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정치적 명분과 경제·군사적 이해관계를 감안해 지금도 이 지역을 절대 상대에게 내줄 수 없다는 강경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육지책으로 돈바스 지역의 핵심인 도네츠크주에 비무장지대(DMZ)와 자유경제구역을 조성하자는 중재안을 냈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모두 이 안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기존 갈등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상황에서 연말 국제 유가만 하루하루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 “종전, 95% 가까워져…몇 주 안에 협상 타결될 수도, 안 될 수도”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2시간 30분 동안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회동 결과에 대해 각자 애매한 평가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두고 “정말로 잘 되면 아마 몇 주 안에 타결될 것”이라면서도 “정말로 나쁘게 되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합의까지 얼마나 가까이 왔느냐’는 질문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져 95% 정도”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협상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돈바스 지역 등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만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한 이견이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암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두 가지 까다로운(thorny) 문제가 있다”며 “이건 하루짜리 협상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침공 이후 4년 가까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 과정 때부터 “내가 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수차례 장담했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진 것만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 28일, 미러 정상회담 직후인 8월 18일, UN총회가 계기가 된 10월 17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대한 바 있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군사·경제 요충지다. 우크라이나 최대 중공업 중심지인 데다 철광석·석탄 등 매장 자원도 풍부하다. 현재는 러시아군이 약 90%를 점령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이를 불법 점유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만약 이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줄 경우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자포리자 지역까지 줄줄이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이 지역을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는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돈바스 지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면 ‘돈바스의 친(親)러시아 주민들을 우크라이나의 탄압에서 보호한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쟁 명분은 무너지게 된다. 러시아 입장에서 돈바스는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지상 육로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군사·물류의 중심지인 이곳을 장악해야만 우크라이나 재침공 등 후일을 도모하기 쉬워진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일부 통제하는 도네츠크에 비무장지대와 자유경제구역 조성을 제안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이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양 입장이) 많이 접근했다"며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돈바스 영토, 자포리아 원전, 외국군 주둔 문제 여전히 미해결…나토 수준 안전보장만 합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해서도 미국은 자국과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공동 기업을 설립해 동등한 지분을 보유하면서 최고경영자는 미국이 맡는 방식을 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원전 개입에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는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그는 매우 협조적”이라고 주장했다.
영토와 자포리자 원전 외에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대체로 합의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에서 “20개 조항의 평화안을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의 거의 모든 측면을 논의했다”며 “미국, 유럽의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은 군사적 차원에서 100% 합의됐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유럽이 큰 부분을 맡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유럽을 100%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에 미국과 유럽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안 역시 러시아가 수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부분이다.
앞서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종전안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국가들이 나토 조약의 집단방위 조항인 제5조에 준하는 안보 보장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직전인 27일 캐나다부터 들러 25억 캐나다 달러(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추가 경제 지원을 약속받았다. 같은 날 유럽 지도자들과도 화상으로 회담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뒤 메신저 앱을 통해 기자들에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15년간 안전 보장안을 제안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최대 50년간의 안전 보장을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제안에 “그 점을 고려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외국군이 주둔해야만 진정한 안보 보장이 이뤄질 것”이라며 “그런 이웃(러시아)이 있는 한 재침공의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전후 외국 군대의 우크라이나 주둔은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하는 조건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라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돈바스 지역을 자유경제구역으로 두는 안을 계속 협상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추가 세부 사항이 없고 우크라이나 국민과도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개 항목의 종전안은 우크라이나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소 60일간의 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담판 기간에도 대규모 공습…‘유럽 전역 사정권’ 극초음속 미사일 배치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비밀 협의 끝에 지난달 28개 항목 종전안 초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후 초안을 들고 우크라이나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항목을 20개로 줄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요구 사항 위주로 작성된 초안에서 우크라이나는 자국군 제한 규모, 나토의 추가 확장 제한 등을 완화했다. 그러면서 영토 문제, 나토와의 관계 같은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미완으로 남겼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종전안 담판을 벌이는 사이 러시아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무력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로이터·AFP통신 등은 러시아가 종전안 담판을 하루 앞둔 26~27일 밤사이 드론 500대와 극초음속 미사일 40발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에너지·민간 시설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이 공습으로 최소 2명이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다. 또 주거 건물 2600곳, 어린이집 187곳, 학교 138곳, 사회 복지 시설 22곳에 난방 공급이 중단되고 약 60만 명이 정전 피해를 봤다. 우크라이나도 27일 러시아에 대규모 드론 반격을 시도했다.
나아가 미국 캘리포니아 미들버리 국제연구소, 버지니아 연구분석기관 CNA 연구진은 플래닛랩스 위성 사진을 토대로 러시아가 신형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 미사일 ‘오레시니크’를 지난 8월께부터 벨라루스의 옛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포착했다고도 알렸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빌미로 사실상 전 유럽을 사정권 안에 둔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 군복을 입고 합동군 사령부 한 곳을 방문해 우크라이나 전쟁 작전 상황을 보고받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특별군사작전의 모든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 날 X(옛 트위터)에 “러시아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 더 큰 고통을 줄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푸틴 대통령은 29일에도 특별군사작전 상황 회의를 열고 “돈바스·자포리자·헤르손을 해방하는 목표는 특별군사작전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러시아는 회담 직후에도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러시아의 타스·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9일 브리핑에서 “키이우 정권(우크라이나)의 군대가 돈바스의 행정 구역 경계를 넘어 철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90%가량의 영토를 제외한 나머지 돈바스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발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 같은 요구가 러시아가 75%를 점령하고 있는 헤르손·자포리자 지역에도 적용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돈바스 경제자유구역 설치,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공동 관리 방안에도 즉답을 피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에서 변두리에 머무는 유럽도 긴장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9일 X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협의체 ‘의지의 연합’ 국가들이 내년 1월 초 파리에서 만나 안전 보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각 회원국의 구체적 기여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러 “우크라가 관저 공격” 주장에 유가 또 요동…‘전황 불리’ 우크라와 ‘반반’ 협상 매우 어려워
러시아는 29일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관저에 드론 공격을 시도했다고 주장해 또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28∼29일 밤사이 노브고로드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관저에 91대의 드론을 발사했고, 자국군이 이를 모두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노브고로드주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관저에 드론 공격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의 이번 테러를 고려해 러시아의 협상 입장을 수정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 “러시아는 이 문제를 대응 없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보복 공격 대상과 일시가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메신저 앱으로 즉각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키이우의 우크라이나 정부 청사 공격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며 “미국은 러시아 위협에 상응하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심지어 이 사건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회담 직후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관저에 대규모 장거리 드론 공격을 시도했다고 알렸다고 전했다. 우샤코프 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금은 그런 짓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가 공세를 계속하고 있으니 (우크라이나도) 공세에 나설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집을 공격하는 건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28일에도 회담 직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시아도 에너지, 전기 등을 싼값에 제공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도울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애꿎은 국제 유가만 요동치고 있다.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28일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 거래일보다 1.61달러(2.76%) 하락한 배럴당 56.7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달 12일 4.18% 떨어진 이래 최대 하락폭이었다. 종전에 따른 제재 완화로 러시아산 원유가 정상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격을 끌어내렸다. 반면 푸틴 대통령 관저에 대한 드론 공격 소식이 알려진 29일에는 2월 인도분 WTI가 거꾸로 1.34달러(2.36%) 치솟아 가격이 배럴당 58.08달러로 돌아갔다.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내년 2월 24일 4주년까지 완전히 종료되기는 대단히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지 않은 점이 문제다. 양국 모두 전쟁으로 국력이 쇠락하고 있지만, 장기 소모전으로 가면 갈수록 러시아가 유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인구·무기·자원 등이 모두 압도적으로 우세한 데다 중국과 북한을 통해 경제·무기 등을 지원받기도 용이한 까닭이다. 더욱이 최대 쟁점인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우방국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카드가 없는 우크라이나와 50 대 50의 평화 협상을 펼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전 “내가 승인하기 전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면박을 괜히 준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사실상의 종신 대통령이라는 점도 러시아가 유리한 부분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대선에서 87.28%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5선에 성공하며 2030년까지 임기를 확보한 상태다. 2020년 개헌을 통해 기존 임기를 초기화한 만큼 2030년에 한 번 더 출마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무난하게 집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달리 반전 여론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중간 선거나 임기 만료 등을 앞두고 조바심을 낼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힘이 아닌 외교만으로 평화 치적을 쌓으려고 하면 할수록 국제 원유 시장만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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