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주인공 옆' 인생도 빛나기에…쇼도, 삶도 계속돼야 한다

■연극 '더 드레서' 리뷰

전쟁 중에도 연극 위해 고군분투

조연의 다양한 인생철학 등 담아

187년 내공 배우들 연기 차력쇼

3월 1일까지 달오름극장서 공연

연극 ‘더 드레서’에서 노먼 역을 맡은 송승환(왼쪽) 배우와 선생님 역의 박근형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나인스토리




사람들은 누구나 주인공을 꿈꾼다. 그러나 주인공의 자리는 한정돼 있고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힘들게 찾은 내 자리가 그저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하는 거울에 그친다면 어떨까. 지난달 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더 드레서’의 드라마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극의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영국이다. 베테랑 배우 ‘선생님(박근형·정동환)’을 중심으로 하는 셰익스피어 전문 순회 극단은 전쟁으로 포탄이 쏟아지고 연일 공습 경보가 울리는 상황에서도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배우와 스텝이 징집되고 끌려간 척박한 상황에서 선생님의 곁을 오래 지켜온 드레서(의상 담당) 노먼(송승환·오만석)은 그야말로 일당백의 일꾼이다. 분장에 쓸 옥수수 가루를 구하러 뛰어다니는 일부터 기분이 널뛰는 선생님을 어르고달래는 일까지. 가장 큰 문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선생님이 통산 227번째 ‘리어왕’ 공연을 30분 앞두고 첫 대사조차 떠올리지 못해 쩔쩔 매고 있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건강 악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기에 상대 배우이자 오랜 연인인 ‘사모님(송옥순·장재은)’과 무대 감독 ‘맷지(이주원)’는 “공연 한번 안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냐”며 취소를 고려 중이다. 과연 이 연극 무사히 막을 올릴 수 있을까.

연극 ‘더 드레서’에서 선생님 역을 맡은 박근형(왼쪽) 배우가 극중극 ‘리어왕’을 연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나인스토리


인터미션 없이 100분을 달려가는 연극은 대체로 유쾌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연극을 올리겠노라 좌충우돌하는 소동극의 클라이맥스는 극중극 ‘리어왕’이 공연되는 순간일 것이다. 극중 배우들이 대기하던 분장실이 스태프가 뛰어다니는 무대 뒤편이나 배우들이 관객을 만나는 무대 전면으로 시시각각 전환되는 역동적인 장면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때 현실의 관객은 ‘리어왕’의 관객이 되는 독특한 경험도 한다. 노먼이 관객에 인사말을 건네는 장면이나 극중극의 커튼콜에서 자연스레 박수를 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극을 이끄는 핵심 매력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박근형·정동환·송승환 등 주역 3인방의 경력만 합쳐도 187년이 될 정도로 공력 높은 배우들이 말 그대로 연기 차력쇼를 펼친다. ‘사모님’ 역의 송옥순·정재은과 극단의 만년 조연배우 ‘제프리’ 역의 송경재·유병훈도 꽉 찬 연기 내공을 뽐낸다.



이들의 연기가 있기에 ‘더 드레서’의 메시지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극단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선생님이고 실제 극의 처음에 관객들의 시선도 온통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쏠리게 된다. 선생님은 평생을 연극에 바친 끝에 큰 인정을 받은 대배우지만 어느덧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어쩔 줄을 모르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여기에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배우 박근형(85)과 정동환(76)이 선생님 역을 맡으며 극에 진정성과 무게감이 더해졌다. 개막에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형 배우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뭔가를 놓친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져 바쁘게 살고 있다”며 “막바지에 도달한 노년의 인간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고뇌를 표현하고자 애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극 '더 드레서'에서 선생님 역의 정동환(오른쪽) 배우와 노먼 역의 오만석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나인스토리


연극 '더 드레서'에서 선생님을 연기하고 있는 정동환 배우. 사진 제공=나인스토리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시선은 선생님을 둘러싼 다섯 인물에게도 향한다. 이들은 비록 이 무대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저마다 빛나기 위해 애쓰는데 그 방식이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선생님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 철썩같이 믿는 반면 어떤 이는 선생님의 주인공 자리를 욕심낸다. 연극에도 삶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내 삶의 의미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정도 아닐까.

작품은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영국 극작가 로널드 하우스의 희곡이 원작으로 작가가 실제 극단에서 5년간 드레서로 일하며 겪은 경험이 모티브다. 1980년 영국에서 초연 후 1984년 극단 춘추 무대로 국내 관객을 만났고 2020년 국립정동극장 무대로 돌아와 2025년까지 총 세 차례 막을 올렸다. 네 번째 무대는 줄곧 선생님을 연기했던 송승환 배우가 드레서 노먼 역할을 맡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송승환 배우는 “확실히 더 새로운 ‘더 드레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연은 3월 1일까지.

출연진 경력이 도합 187년? ㄷㄷ 한국 연기 거장들의 미친 '연기 차력쇼' 🔥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