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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영국 'K아트 거장' 재조명…소수자 예술도 다시 본다 [조상인의 미담]

K아트,거장재조명+신진 발굴

소수자 포용성, 장르 다양성

지역,역사 돌아보는 비엔날레

관람객 눈높이 맞춤형 전시들

백남준 1991년작 '고대기마인물' /사진제공=우양미술관




한국의 미술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의 여파로 작품 구매를 중심으로 본 미술 시장은 3년째 조정기를 보내는 중이지만 전시 관람 인구는 꾸준히 늘어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5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15% 증가한 337만 명의 방문객을 맞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컬처 확산 효과까지 겹쳐 전년 대비 70% 이상 늘어난 65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 금관’ 특별전을 개최한 국립경주박물관에 지난해 2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전국 13개 국립박물관 누적 관객 1470만 명까지 합하면 연간 총 2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아트페어 방문객 또한 시장 침체와 무관하게 증가세를 보였다. 호황기 때 요동치는 미술 시장을 경험한 애호가들이 거품이 꺼지는 조정기를 겪으며 전시 경험을 통해 미술을 더 잘 알아가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더욱 이목이 쏠린 올해 미술계 트렌드를 주요 전시를 통해 예측해 본다.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성, K아트의 거장 재조명과 신진 발굴로 압축된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당시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해 출품작 '마르코 폴로'를 설치중인 백남준. 그는 이 전시로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그 계기로 1995년 한국관 창설을 이끌었다. /서울경제DB


◇백남준·유영국·서도호·이배…K아트 거장의 재조명

올해는 2006년 1월 29일 타계한 백남준의 20주기다. 백남준은 월드와이드웹(WWW)이 발명되기 전인 1974년에 이미 인터넷 시대를 예견하며 작품 ‘전자초고속도로’를 구상했고 그보다 10년 더 앞선 1964년에는 로봇을 선보였다.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처음 선보인 이 원격 조종 로봇은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기훈(이정재)과 같은 번호인 ‘K-456’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백남준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8번 B플랫 장조’의 쾨헬 번호를 딴 것이지만 공교롭게도 ‘K컬처’의 상징적 작품의 공통점이 됐다. 이 로봇은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회고전 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 퍼포먼스로 ‘사망’했다. 백남준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첨단기술로서의 로봇을 넘어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이자 사람처럼 고뇌하고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화된 기계였다. 인공지능(AI)의 상용화로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을 일찍이 내다본 것이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로봇 K-456’을 되살리며 권병준 등 작가들과 함께 ‘AI 로봇오페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경주 우양미술관은 지난해 백남준 전시를 개막해 올 5월까지 이어간다. 경주를 방문했던 백남준이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기마 인물형 토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은 병오년 말의 해에 걸맞은 진취적 기상을 보여준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4월 개최하는 소장품전에서는 백남준의 대형 ‘거북선’이 출품된다. 미국 게티연구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와 협력해 백남준 연구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작하고, 백남준아트센터와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미술관은 현대자동차의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의 후원으로 11월에 양측에서 공동 전시를 개최하는 등 여전히 ‘저평가된 천재’ 백남준에 대한 재조명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영국 1967년작 '작품'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한편 올해는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이 태어난 지 110주년 되는 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 근대 거장전’의 첫 프로젝트로 5월부터 유영국의 최대 규모 회고전을 마련했다. 일본 유학 이후 거의 한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국내파 유영국은 사후에 비로소 해외에서 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터다. 그와 반대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활동으로 평생을 보낸 이성자는 1월 화이트큐브갤러리 전시, 11월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성자는 최근 글로벌 미술계의 화두인 여성, 디아스포라의 교점에 위치한 작가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8월부터 서도호의 사상 최대 규모 전시를 개최한다고 예고했다. 뮤지엄산은 4월부터 ‘숯의 화가’ 이배 개인전을 개최한다. ‘K아트’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입지를 국내 미술관들이 나서 더욱 확고히 다져줄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전시 예정인 조나스 우드 '비볼 스튜디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미술관'


◇장르 다양성, 소수자 포용성

젠더 문제와 성 정체성에 대한 예민한 주제를 다뤄온 성소수자(LGBTQ+) 작가들의 작업을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조망한 전시가 3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국내외 퀴어 예술가 70여 명(팀)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전시라는 점에서 상당한 이목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과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가 기획을 맡았다. ‘문제적 전시’가 될 공산이 크지만 예술적 실천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삼성문화재단은 여성 미술가들에 주목함으로써 그간 백인 남성 위주인 미술계의 기울어진 축을 점검한다. 5월 리움미술관에서는 전 세계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들의 선구적 작업을 조명하는 그룹전이 열린다. 호암미술관에서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리움미술관에서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구정아 개인전이 잡혀 있다. 이들 전시는 젠더 문제에 대한 포용성과 예술 장르에 대한 다양성을 모두 아우른다. 리움의 1세대 여성 설치예술가 기획전은 빛·소리·일상적 소재 등을 활용해 공감각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몰입형 전시로 예술의 경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다. 구정아는 냄새·빛·물리력 등 포착하기 어려운 비물질적 주제를 풀어내는 작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10월에 전시할 ‘린 허쉬만 리슨’ 또한 미국의 원로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포착하고자 하는 요즘 관람객들에게 퍼포먼스형 전시는 ‘어렵다’기보다는 ‘색다른 체험’으로 다가갈 듯하다. 리움미술관이 2월에 선보일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티노 세갈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 대표적이다. 세갈은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연출된 상황’으로 유명하다. 리움 소장품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장소 특정적 ‘라이브 아트’로 관객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는데 리움은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키스’라는 주제의 라이브 아트에 참여할 관객 모집을 진행했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199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난해함’으로 다가가는 ‘개념미술’을 주제로 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또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에서는 독일·미국의 개념미술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이를 한국 미술의 맥락 속에서 달리 펼치는 작가들도 상당하다. 곽덕준·김범·김홍석·박이소·안규철·오인환 등 20여 명이 참여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건만 요즘 예술은 언젠가 썩어갈 작품,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작품까지도 동시대 미술로 품는다. 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릴 ‘소멸의 미학’ 기획전은 이를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작가 다양성의 일환으로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자 하는 관람객도 많아지는 추세다. 올해는 서울대미술관 20주년, 송은미술대상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그 수요를 채워줄 수 있겠다. 삼성문화재단의 젊은 작가 발굴 플랫폼 ‘아트스펙트럼’은 올해 자리를 옮겨 리움이 아닌 호암미술관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전체를 활용해 선보일 예정이다.

안소현 독립기획자는 “최근 몇 년간 다양성에 관한 전시가 늘어났지만 그중 일부는 다양성에 대한 답을 정해두고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담론도 논쟁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반면 올해는 다양성을 보여주며 ‘다양한 시선으로 보게 하는’ 전시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오는 1월2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AI 로봇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인 권병준 작가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8월 리움미술관 개인전이 예정된 작가 구정아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에서 3월 회고전이 예정된 조각가 김윤신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비엔날레로 다지는 K아트 정체성

올해는 비엔날레의 해다.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키아프리즈’ 기간인 9월 첫 주를 전후해 부산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가 잇달아 개막한다. 예년대로라면 8월 말 개막할 2026 부산비엔날레는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기관인 서펜타인갤러리에서 오랫동안 큐레이터로 활동한 아말 칼라프와 벨기에 브뤼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기획자 에블린 사이먼스를 공동 전시감독으로 선정했다. 9월 첫 주 개막하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싱가포르 출신 작가이자 전시기획자인 호추니엔을 예술감독으로 임명하고 예술적 실천과 변화의 연결고리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오는 3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 최대규모 개인전이 예정된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충남 공주를 기반으로 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쌍신공원 등지에서 열리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8월 말부터 11월을 관통한다. 자연미술을 내걸고 2004년부터 시작된 비엔날레가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및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함께 주목받는 가운데 김성호 미술평론가가 총감독으로 선임됐다. 창원조각비엔날레 또한 9월부터 11월까지 ‘비엔날레 시즌’에 개최된다. 창원은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자연과 생명의 조화를 추구한 조각가 문신을 비롯해 박석원·김영원 등을 배출한 곳이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큐레이터 중 한 명인 장쥔, 조각을 전공하고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전시 기획을 병행해 온 조혜정이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다.

여행 일정처럼 비엔날레 관람 일정을 짜야 할 듯하다. 경기도미술관장을 지낸 안미희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는 “우리나라는 가장 많은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단일 국가 중 하나인데 각각의 비엔날레가 어떤 정체성과 차이점을 가지는지 지역성·역사성 등을 따지고 비교해가며 보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예전에는 스타 작가로 비엔날레가 승부수를 던졌지만 지금은 평가 기준도 다양해졌고 현대미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관람객들의 예리한 눈높이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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