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 개시는 연준에 대한 압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행동으로 평가된다. 앞서 리사 쿡 연준 이사의 불법 주택담보대출 의혹을 제기하며 해임하고 이후 법원이 이에 제동을 걸었을 때는 연준 내 이사 한 명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연준의 수장인 파월 의장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게 대배심 소환장을 보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피의자를 기소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다. 미 사법 체계에서 검찰의 일반적인 수사 협조 요청은 거부할 수 있지만 대배심 소환장은 불응 시 법정모독죄로 수감되거나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 법무부가 이번 사안에 대한 기초 조사를 마치고 정식 기소를 목표로 한 강제수사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파월 의장은 미 법무부의 조치를 연준 독립성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현지 시간) 영상 성명에서 파월 의장은 “이번 전례 없는 조치는 (연준에 대한) 행정부의 위협과 지속적인 압력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면서 “행정부가 연준 개보수를 문제 삼는 것은 모두 구실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준이 경제 상황에 근거해 금리를 결정할 수 있을지, 아니면 통화정책이 정치적 압력이나 협박에 의해 좌우될지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여름부터 연준의 워싱턴DC 청사 개보수 비용 증액 문제를 들여다봤다. 연준은 2023년 비용 추산액을 19억 달러로 잡았지만 지난해 25억 달러로 증액했다. 연준은 비용이 늘어난 원인으로 자재·장비·인건비가 예상보다 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의원들조차 이번 수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톰 틸리스 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은 “이번 법적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연준 의장이 공석이 되더라도 새 연준 의장 인준에 반대할 것”이라며 “미 법무부의 독립성과 신뢰성도 의문시된다”고 꼬집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틸리스 의원의 찬성표가 없다면 공화당은 어떤 연준 의장 후보자든 인준을 받는 과정에서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파월 의장을 연준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하려는 노림수라는 분석 또한 제기된다. 연준 독립성에 대한 저서를 집필했던 마크 스핀델은 “파월 의장이 연준 이사회에서 사임하도록 압박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파월 의장이 의장직이 끝난 후에도 이사회에 남아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과반수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파월 의장의 의장직 임기는 올해 5월까지지만 이사직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이에 따라 미국은 물론 국제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연초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연준 독립성 침해, 무분별한 인공지능(AI), 가상자산 규제 완화 등을 이유로 들며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으로 달러 가치가 4~5년 안에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일이 올해 안에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화끈하게 기준금리를 내리라며 파월 의장을 압박해왔다. 주담대 금리가 6%대 후반이어서 미국인의 가장 큰 꿈인 주택 구입에 대한 비용이 너무 높고 주택 시장이 침체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만성 재정적자로 미국의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가 높아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금리를 낮춰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파월 의장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연준 정책의 목표만 보고 통화정책을 운용해왔다. 특히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파악하기 힘든 지난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금리 인하에 비교적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lassic@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