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1년에 한 번은 나지만 오늘 같은 적은 처음이에요. 여기서 자식들 다 키워냈는데….”
16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50대 주민 이 모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붉게 충혈된 눈을 훔쳤다. 30년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했다. 다급했던 비명 소리에 몸만 빠져나오느라 손에 들린 물건은 휴대전화 하나가 전부였다. 직장에서 급히 달려온 아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지만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처지다.
강남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은 거대한 불길이 사그라든 뒤에도 구룡마을 초입은 아수라장이었다. 매캐한 탄내 속에 경찰과 소방 차량이 한데 뒤엉켰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정적과 비통함이 감돌았다. 불길이 마을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발만 굴렀다. 이날 오전 임시 대피소가 차려진 인근 구룡중학교로 몸을 옮긴 주민은 15명 내외에 불과했다. 나머지 상당수가 소방 당국의 대피 지시에도 마을회관 주변을 맴돌며 검은 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70대 주민 장 모 씨는 “이 나이에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가겠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갈 곳을 잃은 이들의 원망은 자꾸만 현장 대원들을 향했다. 1지구 주민인 60대 김 모 씨는 “화재에 대비해 도로 공사를 마쳤는데도 정작 오늘은 소방차가 뒤늦게 진입했다”면서 “호스를 끌고 가서 불길을 잡아달라고 애원해도 다 타고 나서야 진압에 나서는 모습이 마치 억지로 움직이는 듯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이 소방관들을 붙잡고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곳곳에서 연출됐다. 또 다른 주민은 “(대원들이) 애썼다는 점은 알지만 오늘은 일부러 안 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응이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개발 계획 변경안이 지난해 말 시 심의를 통과하며 실질적인 이주와 보상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이라 주민들의 예민함도 고조된 분위기다.
구룡마을은 ‘도심 속 마지막 판자촌’으로 꼽힌다. 7개의 지구에 밀집한 가옥들이 비닐과 합판 등 화재에 취약한 자재로 얽혀 있다. 이런 구조적 결함 탓에 작은 불씨도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지는 악순환이 매번 되풀이됐다. 지난해 9월에도 주택 6채가 전소되는 등 크고 작은 화마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의 경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특히 4·6지구가 직격탄을 맞으며 총 165가구 25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소방은 화재 발생 이후 약 8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 28분경 불길을 완전히 껐다. 이 작업에 인력 324명과 장비 106대가 투입됐으나 진화 여건은 가혹했다. ‘떡솜’이라 불리는 인화성 강한 단열재가 땔감 역할을 하며 화력을 키웠다. 구룡마을 특유의 좁은 골목도 대형 소방차의 접근을 어렵게 했다. 기상 조건 역시 악재였다. 앞서 계획됐던 진화 헬기 투입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무산되다 날씨가 호전된 오후에야 비로소 시작됐다. 당국은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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