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상상할 수 있는가?”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학자, 현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1950년 발표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던진 질문이다. 튜링은 기계가 지능을 가졌는지 판별하는 기준으로 인간과의 대화를 꼽았다.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모방하면 지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는 이미테이션 게임, ‘튜링 테스트’가 여기서 나왔다. 그가 던진 질문들은 인간이 인공지능(AI)을 설계하는 길잡이가 됐다.
튜링 테스트가 발표된 지 70여 년, AI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해 정답을 도출하는 속도와 효율성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인간처럼 글을 쓰고 컴퓨터 코딩까지 해낸다. 그러나 명확한 한계도 드러냈다. 허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내놓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현상이 단적인 예다. 무엇보다 AI는 과업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묻지 못한다.
챗GPT나 제미나이로 정보를 찾고 보고서를 쓰는 시대라지만 단순한 활용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본질은 무엇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에 있다. 정보의 진위와 가치를 가려내고 행간의 맥락을 읽어내는 ‘AI 리터러시(AI Literacy)’, 비판적 문해력이 핵심이다. 한때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문학·사학·철학,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이 AI 전성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학 입시 지형도는 인문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 수시 모집에서 철학과 경쟁률은 2020학년도 9.92대1에서 2026학년도 15.56대1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언어학과(9대1), 종교학과(15.33대1), 미학과(12.56대1) 역시 동반 상승했다. 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컴퓨터공학부는 같은 기간 7.59대1에서 4.31대1로 크게 하락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인문학을 취업이 잘 안 되는 학문 혹은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용 징검다리라고 폄훼한다. 언어 이해, 추리 논증, 논술을 평가하는 법학적성시험(LEET) 준비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철학과 등 인문학 입시 경쟁률 상승에 한몫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인문학의 외연을 협소하게 재단하는 시각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단순히 고전을 배우고 익히는 학문에 그치지 않는다. 복잡한 알고리즘 속에서 윤리적 가치를 정립하고 파편화된 기술을 하나로 연결해 논리와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용광로다. 기술적 숙련도는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기술에 맥락(Context)을 부여하고 사회적 의미(Meaning)를 입히는 작업은 오직 인간의 사유와 질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AI 고도화를 위해 언어학 등 인문학 전공자를 대거 채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AI가 정답을 내놓더라도 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인간이다. AI는 인간과 공생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현상을 제대로 정의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AI 전성시대의 문사철은 더 이상 변방의 학문이 아니다. 인간이 AI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강력한 혁신의 무기다. 인문학을 향한 열기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대한민국 AI 생태계의 질적 도약을 이끄는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 달이면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지 10주년이 된다. 대국은 알파고의 최종 승리로 끝났지만 이 9단이 인간의 직관과 창의력으로 따낸 단 한 번의 승리는 지금까지도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알파고 충격 이후 10년, 바둑계를 넘어 인류 문명 전체가 AI가 몰고 온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섰다. 인간과 AI는 대체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다. 이 9단은 최근 저서에서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AI 전성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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