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의 中心잡기
바닥치는 중국 경제, 이럴 때 기회를 포착해야 [김광수특파원의 中心잡기]
경제·마켓
2024.10.20 18:24:47
중국이 들썩이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 글로벌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중국이 경기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중국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서면서다. 중국은 지난해 위드 코로나 원년을 맞아 5.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목표(5% 안팎) 달성에 성공했다. 주요 투자은행(IB)과 경제 기관은 중국이 올해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지난해보다 나아진 5%대 중반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예상과 달리 지난해와 동일한 목표를 제시했다.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마지노선을 5%로 설정한 것은 사실상 ‘고속 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지만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만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5.3%를 기록하며 순항했다.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가시지 않으면서 2분기부터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보조금과 소비쿠폰 등을 나눠주며 소비 확대를 유도했으나 중국인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동안 악화했던 경제 탓에 줄어든 씀씀이가 쉽게 회복되기는 힘들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키웠다. 각 지방정부는 부동산 개발 업체에 토지를 매각한 수입원을 통해 세수를 확보했지만 시장이 위축되면서 땅이 팔리지 않았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지출은 늘었지만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난이 더해지며 지방정부는 공무원들의 급여를 최대 절반까지 깎을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이 쏟아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결과 2분기 경제성장률은 4.7%로 주저앉았다. 중국의 경제 상황은 3분기 들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위기의식은 오히려 증폭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중국 당국이 본격적으로 바빠진 것은 9월 중순 이후다. 중국 경제를 담당하는 주요 부처와 기관에서 잇따라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발표하며 대책을 쏟아냈다. 지급준비율을 인하하고 정책금리를 낮추며 시장에 유동성을 대거 공급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를 비롯한 부동산 대책도 이어졌고 자본시장 활성화 등의 조치가 나왔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경제를 주제로 삼으며 현재 최우선 해결 과제가 경제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앞두고 증시가 급등하는 등 시장 분위기는 살아나는 듯했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중국 경제 전문가들마저 최대 10조 위안 정도의 대대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벌써부터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최소 3~4년, 길게는 10년가량 일본식 장기 불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위기감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추세대로면 내년 하반기, 늦어도 2026년 상반기부터는 중국이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의 회복은 우리나라에도 중요하다. 한창 사업 계획을 수립 중인 국내 기업들은 내년도 중국 사업 전략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중국 사업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도 중요해졌다. 다행히 올 들어 중국과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 역대 최악의 주중대사로 꼽히는 인사의 교체도 확정됐다. 중국의 변화와 함께 신임 주중대사의 취임으로 한중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 기업의 중국 사업도 상승세를 타기를 기대해본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리사 수, 나델라, 이재용의 10년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사내칼럼
2024.10.13 17:52:57
이달 8일(현지 시간)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이틀 뒤 열린 ‘AMD 어드밴싱 AI 2024’는 취임 10주년 기념식을 방불하게 했다. 키노트 마지막에 “신제품 공개로 10주년을 맞이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는 수 CEO의 소감에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부도 직전이던 AMD를 다시 살려내고 더 나아가 인텔과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로 굳어가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 경쟁을 되살린 수 CEO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때나 지금이나 AMD는 2인자이지만 존재감만큼은 1인자 못지않다. 과거 AMD는 빈약한 제품 경쟁력으로 외면받던 기업이었다. 당시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0%. “인텔이 반독점 소송을 피하고자 AMD를 살려둔다”는 조롱이 나왔을 정도다. 수 CEO가 사령탑을 맡은 뒤 AMD는 발상의 전환과 합리적 가격 정책으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취임 직후에는 ‘니치 마켓’으로 외면받던 게임기 칩셋을 독점 공급해 숨통을 틔웠다. 부활의 기치가 된 ‘라이젠’ CPU는 연산 코어 수를 대폭 늘려 인텔의 허를 찔렀다. GPU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최초로 도입한 회사도 AMD다. 10년이 지난 현재 AMD의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31%에 달한다. 엔비디아가 독주하던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텔은 ‘캐시카우’이던 서버용 CPU 점유율 하락으로 초유의 적자를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 2014년 10월 8일 수 CEO 취임 당일 3.28달러에 불과했던 AMD 주가는 현재 167달러에 달한다. 올해 10주년은 맞은 빅테크 CEO가 한 명 더 있다. 2014년 2월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다. 당시 MS는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전임 스티븐 발머 CEO 시절 무리하게 추진한 노키아 모바일 사업부 인수와 ‘윈도우폰’은 최악의 패착으로 돌아와 모바일 시대 패권을 애플·구글에 내줬다. 오랜 폐쇄적 생태계 전략에 ‘파트너’인 개발자들마저 MS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델라 CEO는 MS를 클라우드·개방형 생태계 중심 기업으로 변모시킨다. 윈도우와 오피스 단건 판매에 주력하던 MS는 나델라 산하에서 애저(Azure)와 구독제 오피스365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오픈AI를 발굴해 생성형 AI 시대 최선두 기업이 된 것은 화룡점정이다. 고루하게 낡아가던 MS는 다시금 애플과 시가총액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나델라에게는 “빌 게이츠에 이은 MS의 제2 창업자”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2014년은 한국 경영계에도 풍파가 일었던 해였다. 그해 5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쓰러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올해가 ‘실질적 취임’ 10년째인 셈이다. ‘외계인을 고문한다’는 찬사를 받으며 메모리·모바일·TV 등 주력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달리던 삼성전자의 지위는 위태롭기만 하다. ‘사업보국’을 상징하던 메모리 기술력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뛰어난 공정 역량으로 애플 A 시리즈 칩셋을 도맡던 파운드리는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에서는 애플과 중국 기업들 사이에 끼인 신세로 1위 수성이 위태롭다. TV 시장에서는 ‘19년 연속 1위’를 넘보고 있으나 TV는 더 이상 첨단전자제품이 아니다. ‘초격차’를 부르짖던 삼성전자에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나올 정도다. 갑작스러운 승계, 뒤이은 사법 리스크 등 잇따른 불운이 타이밍마다 발목을 잡았던 점은 지금도 안타깝다. 이제 사법 리스크도 마무리 단계다. 30년 전 이 선대회장은 ‘신경영 선언’과 ‘애니콜 화형식’으로 초일류 삼성의 시작을 알렸다. 수성의 리더가 아닌 개척의 리더로서 이 회장의 신경영을 보여줄 때다.
윤홍우의 워싱턴 24시
'흑인 여성' 대통령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정치·사회
2024.10.06 19:03:01
백인 남성 알 해리슨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국장이 커피포트에 붙은 유색인종이라는 스티커를 떼어내고 유색인종 화장실 간판을 망치로 부순다. 지독한 차별에 시달리던 흑인 여성 전산원 캐서린 존슨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나사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 ‘머큐리 계획’에 힘을 보탠다. 1950년대 말 실화를 바탕으로 2016년 제작된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지난달 미국 의회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들에게 의회 금메달을 수여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크리스틴 다든을 비롯해 수학자·엔지니어 등으로 활약하며 우주탐사에 기여한 여성들이 영예를 안았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들은 미국의 강점이 모든 시민의 재능을 활용하고 분열을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당시 흑인 여성들의 인간 승리가 미국에서 조망받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갈등은 뛰어넘기 힘든 문제다. 물론 지금 미국은 표면적으로 차별이 사라졌고, 흑인 여성들의 인권도 크게 신장됐다. 하지만 직장 동료나 친구로서가 아니라 흑인 여성 대통령을 떠올리면서 머뭇거리는 미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미국이 과연 이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느냐를 가늠할 ‘세기의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미 대선에는 인플레이션·이민·낙태 등 표심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내 놓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흑인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 어떤 여론조사도 대놓고 해당 주제를 두고 유권자의 호불호를 조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내 많은 선거 전문가들은 바로 이 문제가 미국 사회 주류인 백인 남성들의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송원석 한인유권자연대 사무국장은 “‘미국이 흑인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 준비가 돼 있느냐’라는 질문은 이번 선거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화두”라며 “이를 의식해 해리스는 본인의 인종과 성별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고 짚었다.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을 봐도 그가 얼마나 백인 남성 표를 의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해리스가 선택한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재향군인에 풋볼 코치 출신으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블루칼라 남성들을 끌어오기 위한 맞춤형 인선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해리스 캠프는 경합주를 중심으로 남성들이 즐겨 찾는 메이저리그, 대학 풋볼, 축구 경기 등에 천문학적 광고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해리스를 위한 백인 남성들’이라는 단체까지 출범했는데 이는 백인 남성들을 설득하는 것이 해리스 입장에서 매우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2% 지지율만으로 승패가 바뀌는 초박빙 구도의 선거에서 해리스의 성별과 인종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들의 복잡한 시선이 선거 당일에 어떻게 분출할지 미 정치권이 주목하는 이유다. 특히 대선 승패를 좌우할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는 백인 비율이 80%에 달해 낙후된 교외 지역의 블루칼라 남성들을 붙잡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펜실베이니아는 2016년 트럼프를 찍었다가 2020년 다시 조 바이든으로 돌아섰는데, 그 배경 중 하나로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백인 남성’이었다는 점이 지목된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전문가는 현재 박빙 판세가 여전히 해리스에게 불리한 형국이라고 보고 있으며 해리스 역시 자신을 ‘언더독’으로 칭하고 있다. 전직 미 당국자는 “해리스가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되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내각과 백악관과 국가 요직의 인종과 성별이 바뀔 것이다. 주류 백인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가 이번 선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중대한 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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