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경제소사/9월5일] <1183> 미국 축산업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9.04 17:50:18350만 마리. 남북전쟁이 끝날 즈음 텍사스주를 떠돌아다니던 소떼의 수다. 멕시코 독립전쟁(1810~1821년)의 와중에 방치됐던 스페인산 롱혼종이 야생화하며 불어난 것이다. 텍사스에는 카우보이들이 몰려들었다. 소떼를 붙잡아 낙인을 찍고 소유를 주장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으니까. 롱혼 한 마리의 현지가격은 2~6달러. 소떼를 소비도시까지 몰고 가면 가격은 10배로 뛰었다. 문제는 수천㎞에 이르는 이동거리. 소가 지쳐 병 -
[오늘의 경제소사/9월4일] <1182> 전기시대 개막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9.03 17:29:40[오늘의 경제소사/9월4일]전기시대 개막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http://photo.hankooki.com/newsphoto/2008/09/03/jaharang200809031729320.jpg','GisaImgNum_1','default','260'); 1882년 9월4일, 토머스 에디슨이 증기엔진의 스위치를 올렸다. 굉음과 함께 작동한 기계는 전기를 쏟아내 뉴욕 맨해튼의 가정으로 뿌렸다. 상업용 전기발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전기문명 시대를 연 이 -
[오늘의 경제소사/9월3일] <1181> 우스터 전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9.02 17:25:451651년 9월3일 잉글랜드 서북부 우스터(Worcester). 기병대를 앞세운 의회군 1만여명이 왕당파 군대를 향해 달려나갔다. 내전 격화로 아버지 찰스 1세가 참수형을 당한 뒤 스코틀랜드로 피신,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찰스 2세는 승리를 장담했다. 이권을 약속해 용감하기로 소문난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물론 유럽 대륙의 용병까지 1만6,000여명의 군대를 끌고 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찰스 2세의 기대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정면뿐 -
[오늘의 경제소사/9월2일] <1180> 몽둥이 정책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9.01 17:32:09‘평화를 위해 큰 몽둥이가 필요합니다.’ 1902년 9월2일, 미네소타 축제에 참석한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연설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원전은 ‘멀리 가려면 부드러운 말(언어)과 큰 몽둥이를 준비하라’는 서아프리카 속담. 광범위한 독서로 속담에서 우화ㆍ논문까지 자유자재로 끌어다 쓴 루스벨트다운 인용이었으나 연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 -
[오늘의 경제소사/9월1일] <1179> 대구전쟁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31 16:53:02‘1958년 9월1일 자정을 기해 영해를 4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한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발표에 덴마크와 노르웨이ㆍ네덜란드ㆍ서독 어선들이 아이슬란드 인근의 황금어장을 떠났지만 영국은 달랐다. 퇴거시한을 넘긴 것은 물론 어선단 보호를 명분으로 60여척에 이르는 함대까지 보냈다. 대형 구축함과 프리깃함으로 구성된 막강 영국 함대에 맞선 아이슬란드의 해상 전력은 고작 순시정 6척. 양국은 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 -
[오늘의 경제소사/8월30일] <1178> 세계 최장 다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9 17:47:10‘두 줄기 직선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한없이 뻗어나가 물에 잠겼을까. 하늘로 솟았을까.’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인 폰차트레인 코스웨이(Lake Pontchartrain Causeway)의 사진만 보고도 이런 생각이 든다. 총길이 38.42㎞. 경인고속도로 전구간(23.9㎞)보다 1.6배 길다. 세계 최장교 밑의 물은 폰차트레인 호수. 미국 중남부의 거점도시인 뉴올리언스 광역도시권의 균형 발전이 거대한 호수 때문에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19 -
[오늘의 경제소사/8월29일] 콜베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8 17:34:13수입 억제와 수출 장려,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 ‘짐이 곧 국가’라고 말했던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가 주도한 경제정책의 골자다. 1619년 8월29일 스코틀랜드계 직물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콜베르는 예수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은행과 육군성에 근무하며 인맥을 넓혀나갔다. 본격적인 출세가도에 들어선 것은 귀족들의 반란으로 궁지에 몰렸던 루이 14세의 눈에 들면서부터. 유력 귀족의 -
[오늘의 경제소사/8월28일] 슈워츠코프 장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7 17:36:35이란 왕정이 궁지에 몰렸다.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한다며 1941년 가을부터 주둔한 소련군 10만명과 영국군 7만명을 먹여 살리느라 가뜩이나 부족한 국가 재정이 거덜났기 때문이다. 영국과 소련의 식량과 석유 징발로 수만명이 굶어죽고 얼어죽자 민란을 우려하던 이란 당국은 공권력을 확충하기로 마음먹고 미국에 도움을 청했다. 이란 경찰을 교육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파견한 책임자는 노먼 슈워츠코프(H Norman Schwarzkopf, -
[오늘의 경제소사/8월27일] 앤드루 멜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6 17:16:06앤드루 멜런(Andrew Mellon). 명문 카네기멜런대학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생전에는 훨씬 유명했다. 록펠러ㆍ카네기에 이어 미국 3위의 재산가였으며 10년11개월을 재무장관으로 재임하며 번영과 거품ㆍ대공황을 맛봤다. 74명에 이르는 역대 미국 재무장관 중 세번째로 장수한 그는 대통령 셋을 거친 유일한 재무장관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멜런은 출생(1855년)의 제비뽑기부터 운이 좋았다. 은행장인 부친에게서 27세에 경 -
[오늘의 경제소사/8월26일] 바쿠전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5 17:18:341918년 8월26일 오전10시, 바쿠를 포위한 튀르크군이 앞세운 대포가 불을 뿜었다. 상대는 유전을 지키려는 영국-바쿠 연합군. 튀르크의 선공으로 시작된 바쿠전투는 19일 뒤 영국군의 철수로 끝났다. 사상자는 튀르크 2,000여명에 영국 200여명. 여느 전투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바쿠전투는 1차대전의 승패를 갈랐다. 바쿠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1918년 3월부터. 월동을 마친 백계 러시아군이 볼셰비키와 싸우기 위해 -
[오늘의 경제소사/8월25일] 헨리 모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4 17:41:02헨리 모건(Henry Morgan).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으로도 손꼽힌다. 일개 해적에서 영국령 자메이카의 부총독에 올랐으니까. 재테크를 잘한 덕분이다. 희대의 해적, 모건의 어린 시절은 불분명하다. 1635년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과 계약노동자로 바베이도스로 이주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공부보다는 싸움이 좋아 일찌감치 학업을 접었다’는 점 -
[오늘의 경제소사/8월23일] 조청수륙무역장정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2 17:36:031882년 8월23일, 조선과 청이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름하여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왜 조약이 아니고 장정일까. 조선이 청의 속방이었기에 조약보다 하위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장정은 일방적으로 불리했다. 청상들에게 조선의 통제를 무시하고 마음껏 장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심지어 ‘물고기떼가 기선에 놀라 도망쳤을 때 청의 어선들이 서해안에 머물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까지 포함시켜 -
[오늘의 경제소사/8월22일] 미국 유대인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1 17:57:131654년 8월22일 뉴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한달 보름여 동안 대서양을 건넌 피어 트리호에서 야코프 바르심손(Jacob Barsimson)이 내렸다. 당시 그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직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름이 기억되는 것은 ‘미국 땅에 발을 들인 최초의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바르심손의 도착 1년 전에 영국군과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책(wall)을 세워 훗 -
[오늘의 경제소사/8월21일] 고려인 강제이주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20 17:15:53‘극동 국경지대 조선인들을 내지로 추방한다.’ 1937년 8월21일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문(지령 N-1428-326)의 골자다. 명분은 간첩행위 차단.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 용모가 비슷한 일본인들의 스파이 활동을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었다. 연해주 일대에 뿌리내린 한인공동체에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강제이주가 시작된 9월 중순 이전에 지식인 2,800여명이 남몰래 처형된 데 이어 한인 17만1,781 -
[오늘의 경제소사/8월20일] 콜롬보 선언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8.19 17:52:29‘공정한 발전을 위한 국제경제 질서의 재구성.’ 1978년 8월20일 제5차 비동맹정상회담 폐막식에서 채택된 콜롬보 선언의 일부다. 서방 국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동맹그룹이 경제 분야를 논의하고 결의문까지 내놓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콜롬보에 모인 85개 비동맹 국가들은 여느 때와 같이 군축과 외국 군대 철수 등 정치적 결의문을 채택했으나 무게는 ‘경제선언’에 실었다.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오늘의 핫토픽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