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경제소사/3월18일] 나진 자동전화교환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7 17:33:14퀴즈 하나. 조선 말기에 전화가 들어오면서 시내전화가 먼저 보급됐을까 아니면 시외전화가 먼저일까. 정답은 시외전화이다. 시내전화는 훨씬 나중에 보급됐다. 이유는 당시 도시생활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상류층은 급히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하인을 시키면 돼 굳이 전화를 놓을 필요가 없었다. 1896년 처음으로 궁내부에 교환기가 설치되며 서울∼인천 전화가 개통됐다. 이때 사용된 전화기는 손으로 자 -
[오늘의 경제소사/3월17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6 17:31:49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의 후손은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높은 탑을 쌓아 이름을 떨치려는 인간의 오만은 야훼의 노여움을 산다. 야훼는 인간의 마음과 언어를 혼란에 빠뜨려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쌓기를 중단시킨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다. 그로부터 수천 년 후, 1929년 상업과 기업ㆍ자본주의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착공된다. 1931년 완공된 -
[오늘의 경제소사/3월16일] 정부 생수시판 허용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5 18:33:36물은 지구와 인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물로 보이냐’ ‘물 먹지 말라’‘물 쓰듯 한다’‘물장사(여기서는 술장사)가 가장 승부가 빠르다’ 등 물이 지닌 본연의 성질이나 기능 외에 여러 가지 복합적 의미로도 통용된다. ‘물로 보이냐’는 말은 우습게 보지 말라, ‘물 먹었다’는 언론계에서 낙종의 의미로 쓰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전 한때 물장사에 투자했다가 취임 후 -
[오늘의 경제소사/3월15일] 자원민족주의 선언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4 18:15:01“민족주권국가로서 이란은 어떤 산업도 국유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어떤 국제기관도 이를 조사할 자격이 없다.” 1951년 총리로 선출된 이란 국민전선의 지도자 모하메드 모사데그는 석유국유화 법안을 승인,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자원의 자주적 관리를 주장한다. 모사데그는 20세기 초 이란의 민족주의 지도자로 자원민족주의 운동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 세계 5위, -
[오늘의 경제소사/3월14일] 메이지유신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3 18:11:14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메이지유신이 선포된다.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와 자본주의로의 시작을 알리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천황의 명령으로 세상이 새로워진다는 것. 메이지유신 선포 이후 일본은 정치ㆍ사회적 변혁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시작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발아한다. 메이지(明治)정부는 봉건제도인 바쿠후(幕府)체제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이룬 뒤 1868년 5개조 -
[오늘의 경제소사/3월12일] 캔들러 & 코카콜라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1 18:20:51[오늘의 경제소사/3월12일] 캔들러 & 코카콜라 원시생활을 하던 아프리카 오지의 부시맨에게 떨어진 문명의 초청장. 영화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우주비행사에게 불시착한 곳은 원숭이의 행성이 아니라 인류가 멸망한 지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물건. 회교혁명에 성공한 호메이니의 최우선 금지 품목. 이게 뭘까. 코카콜라다. 세계 200여국에서 -
[오늘의 경제소사/3월11일] 페리, 2차 訪日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10 18:01:49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거대한 ‘구로센(黑船)’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피난 길을 떠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1854년 3월11일의 일이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함대가 에도만에 도착한 것은 두번째. 1853년 7월 첫 방문에서 요구한 ‘개항’의 확답을 받으러 온 참이다. 일본인들은 ‘1년 후 다시 올 때까지 가부를 결정하라’는 통고를 남기고 떠난 페리의 함대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데 놀랐다. 군함도 4척에서 7척 -
[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美-멕시코 조약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9 18:02:56한반도 넓이보다 6배나 큰 땅덩이가 굴러왔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ㆍ유타ㆍ애리조나뿐 아니라 뉴멕시코ㆍ와이오밍ㆍ콜로라도의 일부까지 미국 영토로 편입됐다. 제 나라 땅이 커진다는 데 반대하는 의원이 있을 리 만무. 1848년 3월10일, 미국 상원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승인한다. 조약의 골자는 영토 할양. 멕시코는 136만㎢의 땅을 미국에 넘겼다. 대가는 1,500만달러. 1846년부터 2년간 펼쳐진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멕 -
[오늘의 경제소사/3월9일] 아메리고 베스푸치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8 17:03:13[오늘의 경제소사/3월9일] 아메리고 베스푸치 ‘신세계(Mundus Novus).’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3년 펴낸 팸플릿의 제목이다. 소책자는 유럽 전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아메리고의 항해 경험담은 신대륙 붐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다. 미주대륙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의문이 나온다. 왜 콜럼버스가 아니고 아메리고일까. 답은 -
[오늘의 경제소사/3월8일] 제펠린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7 17:34:05유람하는 데 50달러, 다른 도시로 가려면 150달러. 만만치 않은 운임에도 승객들은 웃으며 내렸다. 하늘을 만끽했으니까. 세계 최초의 상업항공회사인 도이치비행선㈜은 1910년부터 1차대전으로 운항을 중단하기까지 4년 동안 3만4,000여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운송수단은 비행선. 알루미늄으로 만든 골격에 여러 겹의 천을 감싼 후 수소가스 주머니를 넣은 경식(硬式) 비행선은 속도가 초기 비행기에 못지않았다. 1차대전 중 -
[오늘의 경제소사/3월7일] 버뱅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6 17:50:22“길가에 버려진 넝쿨장미를 주웠다. 말라 비틀어진 줄기를 조심스레 옮겨 심고 말을 걸었다. “얼마나 아프니?”. 화합이라도 하듯 조금씩 살아난 장미가 어느날 환하게 웃었다.” 식물종자 개량의 선구자인 루터 버뱅크가 남긴 기록의 일부다. 1849년 3월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15남매 중 13번째로 태어난 버뱅크는 어릴 적부터 식물 키우기를 좋아했다. 다른 형제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면서도 17에이커 -
[오늘의 경제소사/3월5일] 볼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4 18:54:44[오늘의 경제소사/3월5일] 볼타 TV와 컴퓨터, 냉장고와 형광등…. 전기로 움직이는 문명의 이기들이다. 전지(battery)가 에너지원인 제품도 많다. 휴대폰과 노트북컴퓨터는 물론 잠수함까지 전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전기와 전지 둘 중 어느 게 먼저일까. 전지가 앞선다. 인간이 전기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실생활에 응용한 것은 이탈리아 사람 -
[오늘의 경제소사/3월4일] 뉴딜정책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3 18:01:461933년 3월3일, 신임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 입법을 위한 의회소집을 요구한다. 6월16일까지 계속된 ‘백일의회’는 행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을 대부분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긴급은행법에서 농업조정법ㆍ산업부흥법 등의 제정과 금본위제 폐지, 관리통화제도 도입, 테네시강 유역 개발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금융ㆍ노동ㆍ복지 전부분을 망라했다. 뉴딜정책은 단순한 대규모 토목공사나 케인스 경제학의 수용을 넘어서 국정운 -
[오늘의 경제소사/3월3일] 알렉산더 G 벨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2 18:47:34전화 발명자는 누구일까. 대부분 알렉산더 G 벨이라고 답하지만 아니다. 독일인 필립 라이스의 전화 발명이 벨보다 15년 앞선다. 그리스어 ‘tele(원격)’와 ‘phone(음성)’을 합성해 ‘텔레폰(telephone)’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도 라이스다. 특허신청이 2시간 늦는 통에 ‘전화의 발명자’라는 영예를 놓친 미국인 그레이가 만든 전화기는 벨의 제품보다 성능이 훨씬 좋았다. 후발주자에 품질까지 떨어졌음에도 벨은 전화 -
[오늘의 경제소사/3월2일] 중·소 국경분쟁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5.03.01 17:17:08매복 중인 중국군에게 소련군 순찰대가 걸려들었다. 첫 교전에서 희생된 소련군 전사자만 30여명. 1969년 3월2일 우수리(헤이룽ㆍ黑龍)강 전바다오(珍寶島ㆍ러시아명 다만스키섬)에서 일어난 일이다. 복수를 다짐한 소련은 보름 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중국은 소련 기갑부대의 상대가 못됐다. 중국군 800여명, 소련군 6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지루한 소강상태 끝에 같은 해 8월 ‘현상유지’라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다.
오늘의 핫토픽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