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산 양자암호통신 핵심 장비에 처음으로 국가 인증을 부여하며 양자 기업 육성과 글로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컴퓨터처럼 양자역학의 원리를 응용해 해킹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암호 신기술이다. 이번 양자암호통신 장비 인증을 계기로 기술 상용화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이달 SK스퀘어 자회사 아이디퀀티크(IDQ)의 양자키분배(QKD) 장비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들의 보안 기능 시험을 거쳐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보안 검증을 받았다.
QKD 장비가 정보 보안 장비의 국가 인증에 해당하는 국정원 보안 검증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직접 성능을 검증해 품질을 인정한 만큼 인증 기업은 제품을 국가·공공기관에 공급하고 해외에 수출하는 데 유리해진다. 국정원과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취지로 국내 양자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23년 4월 세계 최초로 관련 인증 제도인 ‘양자암호통신 제품군 대상 보안검증체계’를 도입했다. 앞서 양자키관리(QKMS)·양자통신암호화(QENC)에 이어 이번 QKD까지 3종이 한 세트를 이루는 양자암호통신 장비의 인증이 완성된 것이다.
양자암호통신은 입자가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갖는 ‘양자 중첩’ 현상을 응용해 보안 성능을 크게 끌어올린 기술이다. 양자 중첩을 통해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갖는 입자를 만들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이 같은 입자를 큐비트라는 정보처리 단위로 삼아 빠르게 병렬 연산한다면 양자암호통신은 같은 입자를 정보 전달 수단으로 활용한다. 입자는 전달 도중에는 0으로도 보이고 1로도 보이기 때문에 제3자가 중간에서 정보를 엿보는 해킹과 도청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수신자가 양자키라는 전용 열쇠를 사용해야만 비로소 송신자가 보내려 했던 진짜 정보가 0인지 1인지를 알 수 있다.
QKD는 이 같은 양자키를 만들고 수신자에게 사전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양자암호통신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이에 대기업들도 QKD를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다. SK텔레콤은 2018년 IDQ를 인수하고 기업용 양자암호통신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해는 IDQ 등이 참여한 양자 기업 협력체 ‘엑스 퀀텀’을 출범했다. KT도 경쟁 상품을 출시하는 한편 무선 양자암호통신으로는 국내 최장거리인 10㎞ 전송에 도전 중이다. 해외에서도 유럽연합(EU)과 싱가포르 등이 국가 인증 도입 추진과 함께 국가 양자암호통신망 구축에 나섰으며 IDQ가 현지 기업들과 손잡고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양자암호통신 시장은 양자기술 발전에 더해 특히 양자컴퓨터의 해킹 위협에 맞선 보안 업그레이드 수요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 중이다. 과기정통부의 양자정보기술백서에 따르면 양자암호통신 시장은 연평균 34.2% 성장해 2030년 12조 5645억 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QKD가 대부분인 12조 1723억 원을 차지한다.
또 다른 양자암호기술인 양자내성암호(PQC)도 지난해 7월 LG유플러스의 기술이 국가 인증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표준으로 채택됐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도 IBM 등의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하는 등 양자암호 상용화를 뒷받침할 표준화 작업이 국내외에서 앞다퉈 이뤄지고 있다. PQC는 양자컴퓨터가 무력화할 현재 암호 알고리즘을 대체할 새로운 알고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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