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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리더십 붕괴사태]野, '탄핵', '하야' 등 급진적 주장 경계
정치 국회·정당·정책 2016.10.26 15:25:47야당은 최순실씨 국정운영 개입 의혹에 대해 청와대에 집중포화를 퍼부으면서도 일부에서 제기되는 ‘탄핵’이나 ‘하야’ 등 급진적인 주장에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국정공백을 야기하는 발언으로 자칫 정치적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성난 민심이 폭발 상태에 있어 굳이 야당이 앞서나갈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26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오전 회의에서 대통령을 향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할 뿐 탄핵이나 하야 등에 대한 발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더민주 지도부는 이날 당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고 야권은 탄핵을 준비해야 한다. 통치권한을 사이비 교주의 딸에게 넘긴 것은 대통령임을 부인한 것이다.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은 하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으나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더민주의 한 핵심관계자는 “탄핵 주장은 국민이 하는 것이지 야당이 거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설사 탄핵을 하더라도 그 이후 공백 사태에는 국민들이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야당이 탄핵을 주도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민병두 전 민주정책연구원장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등 궐위 상태에서 북핵위기와 경제위기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지나친 비판을 경계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박근혜. 최소한의 개념이라도 있다면 자결하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낸 것을 언급하며 “지만원답다”면서도 “우리 당에서는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논란을 피해갔다./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
서상목 교수 "이승만·김구·안창호, 변혁적 리더십의 귀감"
사회 피플 2016.07.10 17:09:46“독립과 건국을 이끈 이승만·김구·안창호 3인의 공통점은 변혁적 리더십에 있습니다. 민족 수난기에 비전을 제시하고 한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과단성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서상목(69·사진) 인제대 석좌교수(도산안창호선생 기념사업회장)는 최근 서울 신사동 도산기념관에서 가진 ‘애기애타(愛己愛他) 리더십 연구’ 강연에서 “3인에 대한 평가는 각기 엇갈리지만 3인이 모두 보여준 리더십의 전형에서 배울 점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 교수는 1990년대 초 보건복지부 장관과 13~1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4년부터 도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제껏 학계에서도 3인의 인물 비교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3인이 공통적으로 근대 한국의 변혁을 가져온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각기 다른 철학을 가졌기에 리더십 스타일도 전혀 달랐다”고 분석했다. 그는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은 파워 리더십 소유자라고 규정했다. 출중한 영어 실력과 미국 우드로 월슨 대통령과의 친분 등 미국 정관계와 교류를 바탕으로 한 외교독립론을 주창했다. 요인 암살 등 무력항쟁에 힘을 쏟았던 백범 김구의 독립 노선에는 뚜렷한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1940년 일제의 야욕을 경계하며 쓴 저서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진주만 공습 후 뛰어난 예지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정적(政敵)을 용서하지 않는 흡사 마키아벨리즘의 리더십으로 마침내 건국 대통령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독선적 통치 스타일로 빚어진 3선개헌, 4·19혁명 등 불행은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가 ‘열혈 혁명가’로 묘사한 백범 김구는 전형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이다. 서 교수는 백범이 윤봉길 의사 의거 등을 지휘하고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쇠약해진 상해임시정부를 끝까지 이끌었다는 점에서 ‘임시정부 수호자’로 평가했다. 서 교수는 “민족주의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지만 무장투쟁론을 버리지 않고 남경·중경 등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임시정부를 지켰다는 점은 대단한 공적”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좌우(남북)합작 추진을 위한 평양행을 고집했을 때 백범의 사상을 의심하는 세력도 있었다. 서 교수는 “당시 김일성 암살도 모의했을 정도로 백범은 확실한 우파였다”며 “다만 공산 진영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은 과오”라고 평가했다. 도산 안창호는 민중에 다가가는 이른바 ‘서비스 리더십’ 실천가였다고 서 교수는 설명했다. 실제 미국 한인사회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인재양성에 힘썼던 당대 리더십 최고 전문가였다는 것. 개인의 소아(小我)에서 시작해 국가·민족인 대공(大公)에 도달해야 한다는 도산의 대공주의는 민족개조론이나 인격수양론과 맥을 같이한다. 서 교수는 “자신을 아끼고 타인도 돌본다는 애기애타의 정치적 표현이 대공주의”라며 “도산 선생이 산재한 임시정부를 동분서주하며 통합시킨 후 임시정부 대통령에 이승만을 추대한 사실에서도 나타나듯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무실역행(務實力行)을 실천한 민족의 스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인은 절망적 시기에 독립과 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정치세력들을 설득하고 힘을 한곳으로 모은 위대함을 보여줬다”며 “강한 정치력과 인내는 현재 리더십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
[시론] ICT 시대정신과 리더십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6.03.20 14:34:39새로운 희망과 다짐으로 시작한 2016년 한 해가 어느덧 훌쩍 3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지난 연초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바라고 다짐했을까. 바라는 바야 서로 달랐겠지만 답답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다르지 않았으리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변화는 민중이 겪은 결핍과 갈증에서 시작된다. 최근 재조명된 이성계와 광해군의 행보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조선 건국'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만 지키려고 했던 고려 말 권문세가의 횡포에 지친 민중이 새로운 시대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광해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내린 외교적 결단이 '명의 국운이 기울고 있다'는 시대적 통찰과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재평가되는 것도 시대의 정서가 투영된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연결돼야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초(超)연결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독자적 기술로 주도적 생태계를 만들어가던 아날로그 시장 지배 전략은 이제 더 이상 글로벌 디지털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세상에 걸맞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도 변해야 한다. 미래로의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가장 결핍돼 있는 것이 융합과 협업이 아닌가 싶다. 각 분야에 흩어져 있는 역량들을 찾아내 서로 묶어내고 기존 산업의 ICT 장착과 정보보호 내재화 등 세계를 무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함께 도와가야 한다. 이제는 ICT와 문화, 아이디어와 자본,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견기업과 스타트업, 기관과 기관 등 산학연관이 자유롭게 뭉쳐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융합과 협업이 이뤄지기를 소망해본다. 경제의 ICT화를 이끌 협업 공간과 경제 주체들의 협력 네트워크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워진들 무엇하겠는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혁신이 없다면…. 누구도 먼저 자신의 이기(利己)를 내려놓고 협력하지 않는다면…. 기껏 만들어놓은 창조경제혁신센터인들 우리 경제의 혈류를 잇는 제대로 된 협력 지원 플랫폼으로 자리 잡힐 수 있을까. 우리 ICT 관련 기업과 기관들이 먼저 기득권의 폐쇄적 이해와 경직적 행태에서 벗어나 '경제의 ICT화를 통한 국가 재도약'을 위해 손잡고 변화에 앞서 뛰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 재도약이라는 국가적 명제 앞에서 실리를 셈하며 손을 펼쳐 맞잡는 대신 주먹만 움켜쥐고 있다면 융합과 협업과 연결의 ICT 시대정신 구현은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미 수많은 국가가 국적과 영역을 불문하고 협업과 연결·융합의 ICT 정신을 구현하며 미래 시장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섬광처럼 빠른 시장 변화에서 낙오될 것이 자명하다. 바람이 불면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오르도록 얼레를 풀어줘야 한다.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연실을 풀어주지 않고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만 있다면 결국 줄은 끊어지고 연에 실었던 모두의 희망도 곤두박질치게 되고 만다. 거센 바람과 장애를 이겨내고 ICT를 통한 경제 재도약의 바람과 갈증이 해소될 수 있도록 '보다 멀리 보는 안목' '먼저 손 내밀고 협력하는 용기' '과거의 갈등보다 미래의 희망에 힘을 쏟는 지혜'의 '담대한 리더십'이야말로 ICT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적 인사들의 역할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아날로그 시대의 갈등과 반목에 대한 합의와 타협도 중요하지만 이에 들어가는 시간의 의미와 'ICT 시대의 기회'라는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의 값어치를 비교해 과감하게 미래로 건너뛰는 ICT적 리더십이 절실히 기다려진다.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INTERVIEW]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 “기업 가치창조 극대화 원천은 바로 경영자의 리더십입니다”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16.02.29 17:23:44<br /><strong>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전 GE코리아 회장)이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20년간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했다. 한국의 최장수 외국계 기업 CEO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는 70대의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경영이론을 학술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드디어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소울메이트(Soul Mate: 영혼이 통하는 단짝 친구)인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강 회장의 박사학위 취득 소식을 듣자마자 “당신의 끊임없는 열정과 에너지가 자랑스럽다”면서 가장 먼저 축하 이메일을 보냈다. ‘영원한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강석진 회장을 만났다.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strong><br /><br /><br />2007년의 어느 날이었다. 강석진 회장은 한국 경영학계의 명사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현재 명예교수)와 함께 네덜란드 트웬테대학교의 요셉 케셀(Joseph Kessels) 교수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케셀 교수는 인적자원개발 분야의 권위자로서 조동성 교수와 이전부터 친분을 나누고 있었다. 아울러 강 회장은 과거 서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의 ‘경영전략’과 ‘글로벌경영’ 강좌를 맡으면서 조 교수와 두터운 인연을 맺은 사이였다.<br /><br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강 회장은 GE에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담을 꺼냈다. GE는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통한다. 특히 ‘경영의 달인’으로 불리는 잭 웰치 전 회장의 재임 시절(1981~2001)에 GE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자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잭 웰치의 리더십과 GE의 경영방식은 세계 각국의 수많은 경영자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벤치마킹 모델이기도 했다. <br /><br />그날의 화두는 GE에 관한 이야기로 모아졌다. 강 회장은 잭 웰치와 함께했던 시절의 GE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나갔다. 열변을 토하던 그는 펜을 들어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GE의 경영시스템을 알기 쉽게 도식화했다. 골자는 이랬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창조적이고 열린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이 조직문화는 지식생산성 극대화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가치창조 극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br /><br />케셀 교수는 강 회장의 열띤 ‘강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강 회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GE의 경영시스템을 그려놓은 종이를 선물로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세 사람은 재차 회동을 했다. 그 자리에서 케셀 교수는 전날 강 회장이 설명했던 내용을 깔끔하게 도표로 정리한 문서를 꺼내 놓았다. 그러면서 강 회장에게 “이 개념을 토대로 학술 논문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옆에 있던 조동성 교수도 거들고 나섰다. 강 회장으로서는 뜻밖의 상황이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케셀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는 조건으로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7년여에 걸친 박사학위 도전의 여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br /><br />강 회장은 말한다. “GE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무렵까지 미국 포춘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500대 기업(FORTUNE 500) 중에서 순이익과 시가총액 부문 1위를 줄곧 차지했습니다. 그 시절 GE의 시가총액은 국내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을 합친 것의 몇 배가 될 정도였지요. 조동성 교수, 케셀 교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자연스레 GE의 경영비결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요컨대 GE는 어떻게 가치창조를 극대화할 수 있었느냐가 주제였죠. GE는 잭 웰치 회장이 취임한 후 상하 간, 부서 간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조직문화를 도입했어요. 아울러 잭 웰치 회장은 모든 임직원의 두뇌와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지식경영을 본격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GE가 지식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가치창조를 극대화하는 원동력이었지요.” <br /><br />강석진 회장은 지난해 9월 네덜란드 트웬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의 연구 주제는 ‘리더십, 조직문화, 지식생산성, 그리고 가치창조’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 개념을 GE 모델에서 가져왔다. GE는 리더십, 조직문화, 지식생산성, 가치창조의 4가지 항목 모두 가장 성공적인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br /><br /><br /><strong>'리더십과 가치창조’ 연구로 지난해 박사학위 받아</strong><br />강 회장은 먼저 GE 케이스를 4가지 항목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의 틀(Conceptual Framework)’로 설정했다. 그런 다음 삼성전자, LG전자(이상 제조업), 신한은행(금융업), 웅진그룹(기업집단) 등 한국의 유수 기업 4개사를 선택해 실증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 실증 사례 연구는 각 기업 임직원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의 두 가지 방법을 병행했다. 정량분석과 정성분석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두 가지 분석의 결과는 80%가량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는 정량분석과 정성분석 결과의 일치도가 80% 정도면 연구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게 강 회장의 설명이다.<br /><br />경영학에서는 리더십, 조직문화, 지식생산성, 가치창조 등이 주요 연구 주제로 꼽힌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 주제들을 천착하며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학자들은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경영학 논문 가운데 리더십, 조직문화, 지식생산성, 가치창조의 4가지 주제를 통합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아니, 지금까지는 전무했을 가능성이 높다. <br /><br />강 회장은 말한다. “저의 논문을 지도한 케셀 교수가 그러더군요. 리더십, 조직문화, 지식생산성, 가치창조라는 주제를 하나로 묶어서 연구한 것은 제가 세계 최초일거라고 말이죠. 수많은 경영학 논문을 섭렵해봤지만 4가지 주제를 동시에 연구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경영자로서 4가지 주제를 실제 경영현장에서 경험하고 실천해봤기 때문에 이 논문이 탄생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br /><br />케셀 교수는 강 회장을 학술 연구의 장(場)으로 이끈 당사자이자 지도교수였다. 그 때문인지 강 회장의 7년에 걸친 연구 결과에 대해 큰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강 회장에게 “이 논문은 학자들에게도 참고자료가 되겠지만 경영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논문”이라며 “아울러 경영학계와 경영현장의 간극을 크게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br /><br />특히 케셀 교수는 강 회장에게 논문의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연구소 설립도 제안했다. 물론 강 회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올해 중에는 ‘지식생산성·가치창조 극대화 연구소(가칭)’가 문을 열 예정이다. <br /><br />강 회장은 말한다. “처음 학술 연구에 나섰을 때는 3~4년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예상치 못한 과제들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다른 학자들의 선행 연구 논문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데만 1년 반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제가 살펴본 논문이 300건이 넘습니다. 그중에 제 논문에 인용된 학자들만 해도 160여명이나 됩니다. 국내 4개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죠. 마지막에 영어로 논문을 쓰는 일도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고 하는 과정이 아주 길게 이어졌습니다(CEO컨설팅그룹의 사무실 한쪽에는 강 회장이 논문 집필 과정에서 쓴 A4용지와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논문이 완성되자 케셀 교수가 한 가지 조언을 하더군요. ‘당신은 기업 경영자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 논문을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내의 유명한 경영자 30명을 만나 논문 내용에 관해 깊이 있는 의견 청취를 했죠. 제가 만난 경영자들의 의견은 논문의 결론과 논문 말미에 있는 ‘경영 리더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반영돼 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7년 이상 걸렸지만 한 번도 힘들거나 지루하게 느낀 적은 없어요. 무엇보다 GE에서 잭 웰치 회장과 함께 모든 열정을 쏟아 실천했던 경영방식에 관한 연구이기 때문이었죠.”<br /><br /><br /><strong>GE와 한국의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한 주인공</strong><br />강석진 회장이 GE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는 당시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였던 대한전선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였지만 수출업계에서는 꽤 이름이 난 인재였다. 그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GE와 거래를 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대한전선의 음향기기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GE에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 기업이 GE 브랜드 제품을 생산 · 납품하게 된 최초의 계약이었다. <br /><br />GE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한국인 인재를 눈여겨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GE는 미국의 생산기지를 아시아와 한국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운 터였다. 그 일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강석진 회장이 적임자로 떠올랐다. 대한전선은 핵심 고객사인 GE의 입장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결국 강 회장은 파견 근무 형식으로 GE가 요청한 업무를 맡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연스레 GE의 일원이 됐다. 그는 1978년 GE의 아시아 지역 전략기획(Strategic Planning) 담당 이사로 정식 입사했다. 이어 1980년 말에는 GE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GE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CEO였다.<br /><br />강석진 회장은 아시아 지역 전략기획 담당 이사로 근무할 때 GE 본사 경영진에게 한국 사업 전략을 제안했다. GE와 한국의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이 핵심이었다. 사업 전략은 크게 3가지로 이뤄졌다. 첫째는 직접투자 또는 합작투자를 통해 한국에서 장기적인 사업을 펼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기술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는 내용이었다. 셋째는 GE 제품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이었다. 세 가지 모두 한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었다. <br /><br />당시만 해도 대다수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 시장을 단순하게 바라봤다. 그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 자체로만 본 것이다. 그런 시대에 강 회장이 내놓은 한국 사업 전략은 GE 본사 경영진이 보기에는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GE 본사는 강 회장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제안을 결국 받아들였다. 물론 단서가 붙었다. <br /><br />강 회장의 회고다. “돌이켜보건대 제가 만든 한국 사업 전략은 GE의 세계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GE가 진출한 상대 국가의 산업 발전과 GE의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GE 본사 경영진은 제가 제안한 사업 전략을 수용하면서 직접 책임을 지고 성공 가능성을 증명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GE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GE와 한국의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GE코리아의 사업 전략은 1990년대 초부터 GE 전체의 세계화 경영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br /><br />강 회장이 GE코리아 사장으로 발탁될 무렵, 미국 GE 본사에서도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잭 웰치 회장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취임하기 얼마 전 GE 고위 경영진이 참여하는 경영회의가 열렸다. 당시 레지날드 존스 GE 회장은 후임자인 잭 웰치에게 직접 강석진 GE코리아 사장을 소개해줬다. 두 사람의 첫 대면이었다. 잭 웰치 회장은 강 회장에게 한국 사업 전략에 관해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특히 강 회장이 본사에 제출한 GE와 삼성의 의료기기 합작사업 계획에 대해 타당성과 사업성을 따져 물었다. 강 회장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구상을 소상하게 밝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윽고 잭 웰치가 강 회장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시원시원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오케이, 당신의 사업 계획을 승인합니다. 당장 추진합시다.”<br /><br />잭 웰치가 GE 회장으로 재임한 기간과 강 회장이 GE코리아 대표이사로 재임한 기간은 거의 겹친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20년 동안 경영의 동반자로서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잭 웰치는 GE 회장으로 재임할 때 매년 한국을 방문했다. GE 회장이 특정 국가의 현지법인을 매년 방문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강 회장과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다. 강 회장은 GE코리아의 눈부신 사업 실적으로 화답했다. 강 회장은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GE코리아의 매출액을 240억원 남짓에서 무려 4조원으로 키워내는 놀라운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GE의 대변혁을 주도한 잭 웰치 회장은 ‘20세기 최고의 경영자’ 반열에 올랐다.<br /><br /><br /><strong>잭 웰치 회장이 크게 신임한 ‘르네상스 맨’</strong><br />GE 전체 경영진은 매년 초 한자리에 모여 연례 경영회의를 연다. 강 회장도 GE코리아 대표이사 시절 그 회의에 매번 참석했다. 잭 웰치 회장의 신뢰를 듬뿍 받았던 강 회장은 번번이 화제의 중심에 서곤 했다. 잭 웰치 회장은 1990년대 초반 GE의 세계화 경영을 본격화할 때 강 회장이 입안하고 성공시킨 한국 사업 모델을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고 선언했다. 그때 잭 웰치 회장은 “GE 세계화의 해법은 더 많은 강석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br /><br />1990년대 중반 어느 해 경영회의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 회장은 오전 회의를 마치고는 오후 자유시간에 주변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돌아왔다. 그는 경영자로서 바쁜 생활 와중에도 30여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온 프로 화가다. 경영계에서는 ‘화가 CEO’로 명성이 높다. 당시 잭 웰치 회장도 강 회장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 회장이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들어서자 잭 웰치 회장은 그가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금세 알아챘다. 잭 웰치 회장은 강 회장이 그날 스케치한 그림들을 모든 참석자들이 볼 수 있게끔 한곳에 전시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진 캉(Jean Kang: 강 회장의 영어 이름)은 르네상스 맨”이라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br /><br />강 회장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잭 웰치 회장이 GE의 많은 임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알다시피 그는 미술뿐 아니라 과학,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잖아요. 잭 웰치 회장은 제가 경영자로서 많은 성과를 내면서 동시에 화가로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게 대단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저를 가리켜 ‘르네상스 맨’이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GE코리아 시절에 여름이 되면 회사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의 한 달간 휴가를 떠났습니다. 동료 화가들과 함께 세계 곳곳으로 스케치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죠. 물론 제가 없더라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사전 조치를 취했습니다. 핵심 임원 한 명을 정해 대표의 권한과 업무를 대신할 위임장(Delegation of Authority)을 맡겨둔 겁니다. 제가 장기 휴가를 떠나자 처음 몇 년간은 잭 웰치 회장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리를 비운 기간에도 회사는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갔습니다. 잭 웰치 회장은 나중에 웃으면서 ‘진 캉이 휴가를 떠나면서 택한 권한위임 방식이 미래 리더를 양성하는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br /><br />강석진 회장은 열정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지금도 젊을 때 못지않은 열정을 내뿜으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최근 그는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함께 뜻을 모아 ‘창조융합포럼(가칭)’이라는 조직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망가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br /><br />그는 말한다. “21세기는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입니다. 예술, 과학, 산업 등 여러 분야가 서로 경계 없이 넘나들며 창조적 융합을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우리나라가 21세기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사회 전체가 창조적 융합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br /> -
[CEO 인사이드] 허창수, 레스터시티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한 이유는
산업 기업 2016.02.21 17:46:06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레스터시티는 2년 전까지만 해도 2부 리그를 전전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프리미어리그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맨체스터시티 등 빅클럽들조차 레스타에 참패했다. 제이미 바디 등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 부임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한 덕분이라는 것이 허창수(사진) GS그룹 회장의 분석이다. 지난 19일 제주도 엘리시안리조트에서 그룹 신임 임원들과 만난 허 회장은 "시키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며 레스터시티의 사례를 강조했다. 허 회장은 "훌륭한 리더는 구성원들과 분명한 목표를 공유하고 그들의 생각을 진심으로 경청하며 명확한 기준과 꾸준한 관심·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리미어 리그 하위권인 첼시를 반면교사로 언급하기도 했다. "첼시의 조제 모리뉴 감독은 팀이 부진한 원인을 선수들 탓으로 돌리다가 결국 경질된 것"이라고 허 회장은 진단했다. 허 회장은 신임 임원들을 격려하는 한편 "한계에 도전해달라"고도 거듭 강조했다. 허 회장은 "신임 임원 여러분은 이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왔지만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기업과 경쟁하려면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장자의 '정중지와 부지대해(井中之蛙 不知大海)'를 인용하기도 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여름 곤충에 얼음을, 편협한 사람에게 도를 설명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저성장의 장기화, 저유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 등으로 위기감이 크다"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끈질기게 실행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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