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평균 독서량이 일 년에 10권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안 보는 데는 부모의 영향이 큽니다. 아동도서는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인 모든 어린이들이 다섯수레만큼 책을 읽을 때까지 열심히 다양한 책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종이책 출판시장의 불황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아동도서 시장은 지난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발행 부수가 줄어들면서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아동도서 평균 발행 부수는 2,731권으로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30년 이상 고집스럽게 아동도서 출판의 외길을 걷는 출판사가 있다. 바로 도서출판 ‘다섯수레’다.
17일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다섯수레 본사에서 김태진(81·사진) 대표를 만났다. 현역으로 뛰는 출판인으로는 사실상 최고령이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김 대표는 매일같이 직접 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왕복 30여㎞를 운전해 파주단지로 출퇴근을 한다. 기획이나 편집·영업 등 실무에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지금도 신간의 표지 디자인과 원고교정은 물론 회의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 법도 하지만 김 대표는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듯이 책을 만드는 일도 하루라도 게을리하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이끄는 다섯수레는 아동도서 출판에 대한 굴하지 않는 열정을 인정받아 2007년 책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2017년에는 책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사실 김 대표는 출판계에 발을 내딛기 전 방송기자(동아방송)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975년 동아일보 해직 사태로 언론사를 나온 뒤 30여년간 다섯수레 대표를 맡아 아동도서 500여종을 출간했다. 언론사를 그만둔 뒤 곧바로 출판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해직에 불복해 투쟁을 벌이다 몇 년 만에 찾은 일은 대기업 하청업체에 봉제실을 납품하는 것이었다. 지인의 권유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시작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이후 뒤늦게 찾은 일이 출판이었다. 1988년 퇴사 이후 13년이 지난 뒤였다.
김 대표는 “당시 다른 언론사는 물론 기업체 취업의 길이 막혀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가까이 손을 뻗칠 수 있는 게 출판업이 아닌가 생각했다”며 “국민들에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출판사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시 같이 쫓겨난 동료 기자 중 여러 명이 출판사를 차렸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문학과지성사·한길사·다섯수레 3곳 정도만 남았다”고 씁쓸해했다.
다섯수레가 처음 출발한 곳은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정문 앞 인쇄소였다. 당시 사업자금이 없어 지인의 인쇄소 안에 작은 공간을 빌려 편집부 1명, 영업부 1명, 경리 1명과 김 대표 부부까지 5명이 조촐하게 시작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소규모 영세출판사였다. 김 대표는 “그 시절에는 각 대학교 앞에 출판사들이 10여곳은 모여 있었다”며 “정부의 사전검열이 있던 시절 불온서적으로 찍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책들을 주로 출간해 대학생들에게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출판사명도 다섯수레가 아닌 ‘파랑새’라는 상호로 출발했다. 다섯수레라는 이름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된 고(故) 신영복 전 교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자는 생각에 파랑새를 떠올리게 됐다”며 “파랑새가 너무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출감 직후 우연히 사무실에 놀러 온 친구 신영복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한자로 ‘오거서(五車書)’를 써왔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의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사나이라면 모름지기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민을 하다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한글로 풀어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해서 ‘다섯수레’가 탄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는 시대적으로 소설·역사책이 잘 팔리던 때였다. 하지만 다섯수레는 보기 드물게 아동서적 전문 출판사를 목표로 출발했다. 다섯수레에서 처음으로 나온 책은 ‘초롱이의 걸음마 자연공부(1988)’ 시리즈였다. 어린이 자연공부책으로 해외작가의 책을 번역해 출간했다. 당시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꽤나 많은 양이 팔려나갔다. 김 대표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어려서부터 과학이 기초가 돼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동도서 중에서도 과학책을 많이 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며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지금은 40~50대가 됐다고 생각하니 다섯수레에서 나온 책들이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에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했다.
아동도서가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김 대표는 “운동권 출신들이 처음 학부모가 된 1990년대 중반이 아동도서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고 돌아봤다. 당시 서점에 어린이책 코너가 급격하게 커졌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점에 유아와 아동, 청소년 부스가 분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신문에서도 아동도서를 소개하는 코너가 2개 지면에 실릴 정도로 아동교육에 관심이 컸다”고 전했다.
다섯수레가 아동도서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인문서도 여러 권 나왔다. 그중 신영복 전 교수의 편역서 ‘사람아 아, 사람아(1991)’와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1993)’은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두 권의 책은 신 전 교수가 옥중에서 읽고 감명받아 출감 직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섯수레를 통해 번역·출간됐다. 김 대표는 “당시 법정스님이 이 책을 읽고 신문에 칼럼을 쓰셨고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하루에 1,000권 이상이 팔려나갔다. 그것이 다섯수레 사업의 탄탄한 기반이 됐다”고 회고했다.
30년 이상 출판계를 지켜 온 김 대표에게 가장 큰 아쉬움은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점이다. 그는 “아동도서가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 들인 책을 읽는 습관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든 문화의 바탕이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그 나라의 기본이 무너지는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독립운동이나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모두 학생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촛불혁명은 학생이 아닌 40대가 중심이 됐다”며 “이는 현재 책을 읽는 주독자층이 40대라는 점과 연결돼 있다. 책을 읽는 세대가 항상 그 시대의 주인공이었는데 그만큼 어린이·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게 확인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대표는 “교육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진 탓에 아이들이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토론식 수업 위주로 교육정책을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다섯수레는 앞으로도 다양한 책을 통해 더욱 많은 아이들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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