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대부분 사람들은 가해자의 악랄함에 분노를 터뜨리고 피해자의 불운에는 위로를 건넵니다. 하지만 가끔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죠. 최근 터진 ‘N번방 사건’만 하더라도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댓글이 아주 많았죠. 이들 모두가 나쁘거나 악한 사람들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왜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걸까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왜 범죄 피해자를 괴롭히는지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실험을 소개하겠습니다. 1966년 미국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Melvin Lerner, 1929~)는 72명의 여성들을 모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별 이유도 없이 잔인하게 전기 고문을 받는 한 여성을 각각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고문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고, 다른 그룹에는 주지 않았죠. 시간이 흐른 후 러너 박사는 두 그룹에 각각 고문받던 여성에 대한 인상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택권이 없었던 그룹의 사람들이 고문받던 여성의 외모나 성격을 훨씬 나쁘게 기억했다고 합니다. 즉, 피해자를 비난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러너 박사는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을 통해 현상을 설명합니다. 박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고나길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정의로우며 질서정연한 곳’이라고 믿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이런 ’공정한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만이 벌을 받죠. 실험에서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문받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겁니다. 다행히 선택권이 있었던 사람들은 즉각 고문을 중단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겠지만 선택권이 없던 사람들은 그런 부당함과 불편함을 계속 느껴야만 했죠.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마침내 다른 탈출구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바로 사건의 재해석. 피해자가 ‘고문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처럼 ‘공정한 세상 가설’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다 ‘그럴 만하기에’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범죄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사고의 틀이 적용된다는 거죠.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은 본인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름을 부렸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믿음은 틀렸습니다. 현실은 결코 ‘인과응보(因果應報)’나 ‘사필귀정(事必歸正)’ 같은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죠. 실력이 부족해도 타이밍이 좋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나빠 실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분명 있습니다. 범죄 피해는 특히 그렇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성폭행하고, 살인하게 하는, ‘그럴만한 이유’는 결코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고 나쁜 사람들인 걸까요. 그렇게 보기도 어렵습니다.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공정한 세상 가설’을 믿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더욱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믿기에 지금의 괴로움을 견디고 더욱 힘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불의와 부당함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나쁜 뉴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죠.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받고 불행해진 사람들을 자꾸 보게 되면 이 ‘공정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믿음을 잃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면 나는 훗날 보상을 받으리라는 희망이나 약속도 없이 노력만 거듭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재해석하곤 합니다. 착한 희생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해를 당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는 거죠.
특히 범죄 피해자들을 향한 비난과 경멸은 복잡한 면모를 보입니다. 피해자가 그럴만해서 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럴만하지 않으니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거죠 . 피해자를 비난함으로써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 같은 ‘피해자 비난’ 현상은 관찰자나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희생자들 역시 자신이 범죄를 당한 이유가 자신의 특정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는 거죠. 앞으로 특정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범죄 피해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슬픈 자기 합리화인 겁니다.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공정한 세상 가설’이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이후 상황과 조건을 바꿔 수 없이 실시한 실험에서도 아주 보편적으로 관찰된 현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람들은 비만·에이즈(AIDS)·정신질환 등에 걸린 환자들이나 왕따, 성범죄, 가정폭력 피해자들, 빈곤한 사람들에 대해 많이 잔인해진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노력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일 수록 잘못된 ‘공정한 세상 가설’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으며 힘든 현실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수록 내가 사는 곳이 가끔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거겠죠.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불행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때때로 나도 모르게 피해자를 경멸하고 싶거나 비난하고 싶어진다면 그 생각을 입 밖에 내기에 앞서 우리가 ‘공정한 세상 가설’에 얽매여있는 건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더 힘들고 아픈 피해자들을 비난하거나 모른 척 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글=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영상=김한빛인턴기자 one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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