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K방역’이 빛을 발하며 한국의 의료 수준 전반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는 의료자원이 넘쳐 극심한 경쟁으로 과잉진료를 걱정하는 반면 생사를 넘나드는 외상센터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등 우리의 의료체계 곳곳에서는 지나친 쏠림현상이 유발한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국내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한 불균형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지방병원과 필수공공의료 부문의 의사 부족은 심각한 지경이다.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전국 평균 2.0명이지만 지역별로 서울은 3.1명에 달하는 반면 세종 0.9명, 경북 1.4명, 울산·충남 1.5명 등 일부 지역은 서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 간 비교 시 인구당 의사 수의 편차는 훨씬 벌어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부인과를 비롯해 필수의료서비스로 분류되는 내과와 외과·소아과 진료과목이 없는 곳도 있다. 분만서비스를 제때 받기 어려운 취약 시군구 수는 지난 2016년 37곳, 2017년 34곳, 2019년 33곳으로 시간이 흘러도 뾰족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곳도 지난해 25개 지역으로 집계됐다. 권역외상센터는 2017년 283명 모집에 179명 채용에 그친 데 이어 2018년에는 283명 중 175명, 지난해 271명 중 186명 등으로 자리 세 곳 중 한 곳이 비어있다. 국내 의료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산모가 분만할 곳을 찾지 못해 아이와 엄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고, 촌각을 다투는 중증외상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우리 의료체계의 현실이다.
반대로 도심에서는 의사들이 너무 몰려 과잉진료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 발간한 ‘2017년 기준 보건의료 질 통계’를 보면 만성질환에 따른 입원율은 노인인구가 많을수록 증가하고, 의사 수와 요양기관 수, 요양기관 병상 수와 같은 의료자원의 수가 많을수록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병상 수가 급증세를 보이는 요양병원은 10년 동안(2010~2019년) 병상 수 증가와 함께 경증환자 입원비율이 5.0%에서 11.8%로 높아지고 입원기간도 147일에서 174일로 대폭 늘었다. 병원 투자비용에 대한 수익실현 차원의 과잉진료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특수 의료장비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국내 의료기관이 보유한 MRI와 CT는 지난해 각각 1,656대, 2,049대로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5.9%, 1.8%씩 증가했다. MRI의 경우 인구 100만명당 29.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4개)을 훨씬 웃돈다.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특수 의료장비 이용 급여비가 불어난 추세를 볼 때 의료기관이 고가의 장비를 통해 수익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정처는 “적정 수가를 검토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불필요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사들의 고령화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활동 중인 의사 수는 10만7,588명으로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의사 비중은 7.2%인 7,849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65세 이상 활동의사 수는 2012년 4,165명에서 7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80세 이상도 같은 기간 400명에서 82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의 의사는 경험이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의학지식을 필요로 하는데다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만큼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3년마다 갱신해야 하지만 연간 8점(8시간)의 보수교육(사이버 강의도 운영)만으로 대체돼 의사의 자격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5년간 의사 면허 불법대여 사례 300명 중 60~70대가 133명으로 44.3%에 달하는 등 악용되는 경우도 관측된다.
국내 의료자원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여당에서는 공공의료대학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공중보건장학제도 같은 수급대책을 내놓고 있다. 의사들의 적재적소 배치를 위해 더 많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내 의료체계의 문제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수명이나 낮은 사망률 등 국내 보건의료체계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민간 의료체계의 근간을 유지하되 의사들이 부족한 곳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수급을 조절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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