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자아를 무화(無化)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들을 추구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물방울 그림에 자신을 녹여낸 원로화가 김창열 화백이 5일 오후 타계했다. 향년 92세.
김 화백은 실제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영롱한 물방울 그림으로 평단과 대중의 인기를 모두 얻은 거장이다. 1929년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반공주의자로 낙인찍혀 16세에 홀로 월남했고 이후 월남민 수용소에서 부친과 상봉했다.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워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 3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했다. 다섯 살 아래 누이를 피난지 수원에서 잃고 무덤 앞에서 종일 울던 날의 눈물은 그림 속 물방울보다 더 많았고, 훗날 화가는 “중학교 동창 180명 중에 살아남은 게 겨우 60명”이라고 술회하며 “살아온 인생이 구운몽 같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대신 했던 경찰직에 눌러앉았고 부평 경찰전문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1년 이상 제주에서 피난시절을 보낸 인연이 지금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으로 이어졌다. 그런 김창열의 1950~60년대 작품에서는 전후(戰後) 실존주의가 꾹꾹 담겨 있다. 형태도 없이 물감 흔적과 붓 휘두른 화가의 몸짓만 남은 앵포르멜이 그의 초기작을 이룬다. ‘피,땀,눈물’로도 읽히는 그의 물방울은 격변의 한국 현대사를 걸러내 추상적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착시현상을 이용한 물방울에 진정성을 담았고, 그 물방울은 ‘충만한 빈 공간’이기에 곱씹고 되짚을 이유를 만들었다.
김창열이 미술계에 남긴 족적이 깊고 크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었고,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제사’ 등의 작품으로 김환기·이응노와 함께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했다. 그해 영국 런던의 국제청년작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초대됐고, 귀국행 비행기표를 바꿔 뉴욕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단돈 4달러 뿐”인 채 미국에 도착해 넥타이공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이후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아방가르드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파리로 떠났다.
1970년에 조각가 문신과 함께 파리 근교 마구간을 작업실 겸 숙소로 쓰며 작업을 이어갔고, 그곳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마르틴 질롱 씨를 만났다. 재료 살 돈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검은 바탕에 오롯한 물방울 하나와 그 그림자를 그린 1972년작 ‘밤의 이벤트’가 물방울 그림의 시작이고, 그 해 프랑스 파리의 ‘살롱 드 메’에서 첫 선을 보여 호평 받았다. 1975년에는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 위에 올려진 물방울을 그리고, 환갑 이후 선보인 ‘회귀’ 연작은 한자 위에 물방울을 그리는 등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해 물방울 회화로 승화시키며 고인은 거장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국립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고인의 작품이 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그의 작품은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아 지난해 7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1980년작 ‘물방울 ENS8030’(162.2×130.3㎝)이 5억9,000만원에 팔려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