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길 잃을까 꽃잎을 뿌려주고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은 듣노라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꽃구경 봄구경 눈감아버리더니/한웅큼씩 한웅큼씩 솔잎을 따서/가는길 뒤에 다 뿌리며 가네/어머니 지금 뭐 하신대유~/아 솔잎을 뿌려서 뭐하신대유~/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려는 아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그 자식이 길을 잃어 위험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다.
#식량 부족 때문에 부모까지 버리는 마을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도 어머니 오린(사카모토 스미코)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보다 자식 걱정이 먼저다.
오린이 사는 마을엔 70세가 된 노인은 나라야마(楢山)에 산 채로 버리는 ‘기로(棄老)’라고 하는 아주 못된 풍습이 있다. 오린이 69세가 된 봄, 그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겨울이면 나라야마로 갈 것임을 알린다. 심지어 자신이 나라야마에 갈 정도로 쇠약해졌음을 자식과 마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일부러 돌절구에 이빨을 부딪쳐 깨뜨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누구나 오린처럼 죽음 앞에서 의연하긴 어렵다. 이웃집 영감 마타의 경우 죽음이 두려워 나라야마에 가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도망을 다닌다. 이 마을에 기로의 악습이 생긴건 순전히 식량 부족 때문이다. 양식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겨울에 태어난 아기가 논바닥에 버려지기 다반사고, 여자 아이가 소금 한 줌에 팔려가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남의 음식을 훔치는 게 가장 큰 죄여서 이웃의 식량을 도적질한 가족 전체를 본보기 삼아 산 채로 파묻을 정도다. 70세가 된 노인이 나라야마 산으로 떠나야하는 이유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식량 부족 때문에 부모까지 버려야 하는 미개한 인간공동체, ‘나라야마(楢山)의 노래(부시코·節考)’는 너무도 참혹하다.
#한국 사회에도 고령화 그늘 짙어가
우리 사회도 고령화의 그늘이 차츰 짙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로 인한 노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경제적 행복을 이루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노후준비 부족’을 꼽았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0곳 중 4곳 꼴로 노후준비 방법이 없는 상태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는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국내 노인의 빈곤율이 48%(2013년 기준)로 전체 연령 빈곤율(13.7%)보다 3.5배 높다는 통계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는 아들 걱정 뿐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도덕률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생존의 본능만이 지배하는 인간 공동체가 얼마나 처참하고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문명과 단절된 산간 오지를 배경으로 생존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삶 속에서 ‘인간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으로, 그러나 심미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한 평자(評者)도 있다.(김용규, ‘영화관 옆 철학카페’, 이론과실천, 2002년)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었을까. 1983년 칸영화제는 이 영화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선사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나라야마 산 정상에서 오린은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어머니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아들 다츠헤이(오가타 켄) 뺨을 세차게 때려 돌려세운다. 그러고 나서야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눈물을 떨구는 오린, 그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아들에 대한 걱정 뿐이다.
#초고령사회 ‘인간의 길’ 어디인가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전체인구에서 65세이상 인구비중이 20%이상)에 진입하고, 2050년엔 65세 이상 노인비율이 46% 이르게 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어드는 만큼 사회적 갈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마치 집을 야금야금 갉아서 무너뜨리는 흰개미처럼 고령화 문제가 우리 사회공동체를 조금씩 갉아먹다가 일거에 붕괴시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령화가 급속해지는 우리 사회가 취해야 할 ‘인간의 길’은 과연 무엇인가.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던진 이 물음을 비켜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