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탈출 막기 위해 만든 도로는 ‘치유의 길’로 변모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해 소록도(小鹿島)라 불린 섬.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거리에 위치한 소록도는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놓여 있는 주변 섬들과 잔잔한 바다는 배경으로 보일 정도로 소록도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센인 정착 100주년을 맞아 25일 찾은 소록도에서 기자들을 맞은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이곳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섬이라는 사실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지금은 한센병이 약물로 치료되는 감염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는 유전병이란 오해 때문에 한센병에 걸린 이들은 가족에게조차 버림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김 신부는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가 한센인 100여명을 이곳에 강주 이주시킨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소록도에는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센인들의 피와 고름이 흐르던 1번지 성당은 2014년 재건축을 통해 스페인풍의 성당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들이 과거 느꼈던 상처와 고통의 흔적은 소록도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환자들의 희생과 피땀으로 조성된 소록도 중앙 공원 입구에는 당시 병원장이 한센인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할 때 강제로 정관수술을 했던 감금실과 검시실이 있었다. 소록도에 살고있는 이들은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가능하면 이곳을 피해 다닌다.
‘제비선창’ 역시 태풍에 의해 그 모습이 많이 훼손됐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1984년까지만 해도 소록도의 부두는 직원 전용과 환우 전용으로 분리돼 있었다. 환우 전용 부두였던 ‘제비선창’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소록도 방문 직전 폐쇄됐다.
한센인의 한이 서려 있는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센인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며 43년간 봉사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머물던 공간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복원공사를 거쳐 새 단장한 이 집은 소록도 병사 성당과 더불어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
소록도 서쪽 끝 십자봉 근처에 위치한 ‘치유의 길’은 과거 한센인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자 이들의 상처를 보듬는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33년 국립소록도병원 제4대 원장으로 부임한 수호 마사키는 한센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인권유린을 저지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사키 원장 시절 소록도 탈출을 시도하는 원생들이 많아졌고, 마사키 원장은 한센인들의 탈출을 감시하고 탈출자들을 신속히 잡기 위해 한센인들을 동원해 20일 만에 4km의 길을 완공시켰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소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여기엔 원생들이 힘들어 자살한 낙화암이 자리하고 있다. 슬픔과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김연준 신부와 수녀들은 이 길을 ‘치유의 길’로 명명했다. 김연준 신부는 “소록도에는 한센인들이 아픔이 녹아 있지만, 이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보듬어 준 사람들로 인해 아름다움도 깃들어 있다”며 “소록도가 힐링의 땅으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흥=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