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사는 깊어지고, 사랑은 애틋해지고, 기도는 간절해졌습니다.”
기나긴 암투병으로 지난해 위독·사망설에 시달렸던 시인 이해인(사진) 수녀가 대중 앞에 나타나 암투병의 고통과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30일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에서 ‘민들레 영토에서 꽃피운 사랑과 기도의 삶, 40년’ 강연회를 열었다.
‘민들레 영토’는 이 수녀가 지난 1976년 종신서원을 기념해 펴낸 시집으로 현재까지 판매량만도 38만권을 넘는다. 그는 2008년부터 암투병을 해왔다.
이날 흰 수녀복을 입은 수녀는 “제가 목소리도 생생하고 얼굴도 창백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는 게 맞느냐’고 자주 질문한다”며 “지금까지도 힘든 치료를 받고 있고 통풍에 대상포진까지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제가 젊었을 때 쓴 시를 보고 투병하고 나니까 시가 깊어졌다는 평가를 한다”며 “그런데 아프고 나니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고 투병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됐던 1976년부터 현재까지 4단계로 구분했다. 특히 시집이 발표되고 큰 인기를 끌었던 1976년부터 1986년까지는 예상외로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는 “1976년 가톨릭출판사에서 ‘민들레의 영토’를 1,500부 찍었는데 책이 신문에 소개되면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며 “수도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유명세를 치르면서 얼굴에 기미가 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2005년 ‘민들레의 영토’가 30주년을 맞이할 즈음 제 시집 3권이 베스트셀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며 “제 책이 그만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도 풀어놓았다.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셨을 때 제 우는 얼굴이 몇몇 신문 1면에 나왔더라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이해인 수녀) 또 나왔다’고 그랬겠죠. 그런데 법정 스님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스님은 TV에도 나오시면서 저만 속물 취급하지 마시라고 했어요(웃음).”
이 수녀와 법정 스님의 인연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수녀가 ‘민들레의 영토’ 시집을 법정 스님에게 보내고 법정 스님이 이 수녀에게 답장을 하면서 두 사람은 수십년간 인연을 쌓았다.
그는 ‘민들레의 영토’는 수녀원에서 체조하다 돌 틈에 핀 민들레를 보고 쓴 시집이라고 했다. 그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먼저 노력을 해야 하며 저 사람이 내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앞질러서 하면 훨씬 좋은 일이고, 행복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아직은 행복한 길 위에서 살아 숨쉬는 순례자로, 일상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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