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유승민 무소속 의원 등 여야 3당의 탈계파 세력이 함께 참여하는 입법 연구모임이 탄생했다. 김 대표는 당내 친노·운동권과 대립하는 비노 세력의 수장이고 유 의원은 친박과 대립해온 비박계의 핵심이다. 두 명 모두 탈계파 의지가 강해 모임의 성격과 향후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임을 주도한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5일 “미래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사회통합적 정책과 제도의 밑바탕을 그리자는 취지에서 초당적 형태의 연구모임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모임의 명칭은 가칭 ‘어젠다 2050’이다. 독일의 노동개혁 모델인 ‘어젠다 2010’에서 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당내 혁신 목소리를 내온 비주류로 지난 비대위원에 내정됐다가 친박들의 반발로 추인이 무산된 적이 있다.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 체제에서는 혁신비대위원에 들지 못했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를 할 당시 정책위부의장 겸 민생정책혁신위원장을 맡아 호흡을 맞췄던 김 의원이 여야 3당을 아우르는 비주류 핵심 의원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혁신 가능성을 찾기보다 외부에서 새로운 조직을 통해 정치혁신 가능성을 엿보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모임에는 3당의 거물급 비주류들이 대거 참여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 의원을 비롯해 이학재·박인숙·오신환·주광덕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4·13 총선 이후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에 오르려 하자 반대 성명을 냈던 ‘혁신모임’ 소속이다. 친박계가 차기 대선 후보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고 비박계를 몰아내기에 나선다면 이들과 유 무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비박발(發)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 의원 역시 ‘어젠다 2050’에 참여한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학 강의에 나서는 등 독자 행보에 나서고 있어 정계개편의 핵으로 지목을 받고 있다.
더민주에서는 김종인 대표와 조정식 의원, 이철희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제1야당의 대표가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한 연구모임에 참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파장이 예상된다. 더구나 김 대표의 임기가 더민주 전대가 시작되는 오는 8월 말쯤 만료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김 대표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더민주가 친노·비노 등 당내 투쟁에 빠질 경우 새로운 정치세력의 킹메이커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손학규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계복귀를 노리는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이 더민주 내로 재진입할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평가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서 조 의원의 ‘어젠다 2050’ 참여는 손 전 고문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략통인 이철희 의원 역시 비노·중도 성향 출신으로 ‘어젠다 2050’의 정무적 책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당에서는 김성식·김관영·오세정 의원이 참여한다. 김성식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으로 호남 일색인 국민의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더민주 탈당파인 김관영 의원은 국민의당 내에서도 더민주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합리적 인물로 통한다. 비례대표 2번인 오세정 의원 역시 학자 출신으로 계파색이 옅다. 이들 모두 핵심 안철수계나 호남계에 속해 있지 않지만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가까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대선을 앞두고 호남 출신 인사들로부터 ‘안철수 비토론’이 흘러나올 경우 이들이 안 대표를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끌어오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어젠다 2050’이 여차하면 정계개편을 촉발할 ‘분화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정당·정파를 따지기보다는 정책적 노선에서 방향성을 공유하고 또 실제 정책 구현 의지와 역량을 갖춘 인사들로 초점을 맞춰 모신 것이 전부”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어젠다 2050’에 합류한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과 이철희 더민주 의원 등 대다수 참여자는 “김세연 의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참여한다고 했을 뿐”이라며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했다. ‘어젠다 2050’은 미래입법 과제를 교육·고용·복지·조세·행정 등 5개 분야로 나누고 △급속한 고용형태 변화에 대응하는 맞춤형 복지제도 개발 △교육·고용의 유연성 및 사회보장성 강화 △조세수입 구조의 다변화 △복지전달체계의 전면 재설계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의 근원적 해소 등의 세부 목표를 중점 연구할 방침이라고 김 의원은 설명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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