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아이스하키와 기업 경영은 아주 유사합니다. 잘하는 팀의 경기를 보면 굉장한 자극이 되거든요. 기업 경영도 우리보다 좋은 회사와의 차이를 어떻게 줄이느냐, 그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의 한라그룹 회장 접견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 아이스하키가 강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회장은 건설, 자동차 부품 제조·판매 등이 주력 사업인 한라그룹의 수장이지만 아이스하키 마니아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4년 12월 당시로는 국내 두 번째 실업팀인 안양 한라를 창단했고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취임했다. 한라나 대표팀의 경기 내내 관중석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늦은 밤까지 DVD 영상을 보며 그날 경기를 복기한다. 부인 홍인화 여사와 함께다. 홍 여사는 선수들과 휴대폰 메신저를 나누고 경조사도 직접 챙긴다. 정 회장은 “요즘은 와이프가 저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좋아한다. 경기장에 가면 그 사람 목소리밖에 안 들린다”며 “골을 허용하는 것은 참아도 우리 선수가 다치는 것은 못 보는 스타일”이라며 웃었다.
정 회장은 한국 대표팀의 평창올림픽 출전을 이끈 주인공이다. 원래 한국 아이스하키는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동출전권제도가 2010밴쿠버올림픽 뒤 폐지됐기 때문이다. 국제연맹은 그러나 2014년 9월 예외적으로 한국의 2018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허용했다. 남자 세계랭킹을 2010년 33위에서 4년 만에 10계단이나 끌어올린 열정을 인정한 것이다. 협회는 유명 감독 선임과 귀화선수 영입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하키 투게더’라는 아이스하키 세계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아이스하키가 낯선 15개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경기장 등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이 한라는 핀란드 2부리그 팀을 인수해 유망주들을 파견 보냈다. “조직이 어려울 때 우리 직원들한테 먼저 믿음을 얻고 그다음에 외부의 신뢰를 회복해나가야 하듯 아이스하키도 똑같다. 국제연맹에 출전권을 호소하거나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선수들한테 믿음을 얻는 게 먼저였다”고 정 회장은 말했다.
협회장 취임 후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재 20억원을 내놓은 정 회장은 “취임했을 때 첫 과제가 올림픽에 나가는 거였다. 개최국이 못 나가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돌아봤다. 스위스의 국제연맹을 직접 찾아간 정 회장에게 연맹은 세계랭킹 18위를 자동출전의 조건으로 걸었지만 한국 아이스하키의 의지를 확인한 연맹은 이후 조건과 관계없이 출전권을 줬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백지선 감독의 프레젠테이션도 주효했다. 백 감독은 아시아인 최초의 NHL 우승자다. 르네 파젤(스위스) 국제연맹 회장은 최근 아시아 각국 협회가 모인 자리에서 “한국이 하는 것처럼만 해라”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의 꽃이다. 2010밴쿠버올림픽의 경우 전체 입장 수입의 46%가 아이스하키에서 나왔다. 한국에서는 아직 비인기 종목이지만 올림픽 개최를 통해 바뀔 수 있다는 게 정 회장의 믿음이다. 그는 “한국은 올림픽 이후 아이스하키에서 강국을 뛰어넘어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이 아니라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얘기는 사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님이 평창조직위원장 시절에 해주신 겁니다. 어쩌다 성적이 나빠도 금방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선진국이겠죠. 선수는 물론 지도자, 심판을 포함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발전시켜 아이스하키 선진국을 만들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올림픽은 정말 감사한 기회인 거죠. 정말 중요한 것은 올림픽 이후입니다.”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중국이라는 것도 좋은 기회다. 정 회장은 “중국은 2022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벌써 아이스하키팀을 8개나 만들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의 중국 진출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협회도 국제화되는 계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아이스하키와는 이미 한중일 아시아리그를 통해 안면이 있다. 정 회장이 구단주인 안양 한라는 2003년 아시아리그 출범 때부터 뛰어들어 2009-2010시즌과 2015-2016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2014-2015시즌부터는 세계랭킹 2위의 강국인 러시아도 합류해 4개국 9개 팀으로 규모가 커졌는데 한라는 최근 적지에서 사할린을 누르고 우승했다. 창단 22년 만에 맞은 최고의 순간이었다. 창단 당시는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이스하키단이 그룹의 자랑으로 자리 잡았다. 인센티브 프로그램인 해외 원정응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는 한라의 문화로 정착한 것 같다. 직원들이 단합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데 가장 큰 툴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에어컨·김치냉장고 등이 주력 제품이던 시절에 ‘세일즈 프로모션 차원에서 우리도 스포츠팀을 하나 만들어보자’ 이렇게 시작한 겁니다. 젊은 직원들이 낸 의견 중에 아이스하키가 눈에 띄더라고요. ‘찬바람’ 나오는 제품을 만들던 우리 회사 이미지랑 어울리기도 했고요.”
아시아리그 출범 초기만 해도 일본팀에 10점 차로 지던 한라는 아시아를 호령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이 사이 대표팀도 함께 발전해 4월 폴란드 세계선수권에서는 한일전 사상 첫 승리를 기록하기도 했다. 내년 2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노릴 정도로 한국 아이스하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다음 목표는 올림픽 8강이다. 12개 참가국 중 한국은 세계랭킹 1위 캐나다, 6위 체코, 7위 스위스와 같은 조가 됐다. ‘레벨’이 다른 팀들이다. 1승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 회장은 “요즘은 올림픽 생각에 잠이 안 올 정도다. 이제까지 한 노력의 2배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이라며 “강팀과의 연습경기를 어떻게든 많이 잡고 수시로 테스트를 실시해 선수층을 늘려가야 한다. 지금부터는 비상체제”라고 힘줘 말했다.
“아이스하키하고는 계속 같이 가야죠.” 평창올림픽 이후의 계획을 묻자마자 돌아온 정 회장의 대답이다. “협회장 임기가 끝나면 안양 한라 명예 구단주를 할지도 모르겠고…. 자리야 어떻든 팜(farm·육성) 시스템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2군도 만들고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어요. 아마도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요.”
/정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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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서울 △1974년 서울고 졸업 △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2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석사 △1978년 한라해운 사원 △1986년 한라공조 대표이사 사장 △1989년 만도기계 대표이사 사장 △1991년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 △1997년 한라그룹 회장 △2001년 한라건설 대표이사 회장 △2008년 만도 대표이사 회장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女아이스하키 영화 ‘국가대표2’ 흥행바람 평창으로 이어지길...
나무 스틱 들고 국제대회 도전기 그려...저변 확대 도움 기대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오는 8월에 개봉하는 영화 ‘국가대표2’의 흥행 여부에 몹시 관심이 간다고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는 전형적인 ‘남자의 스포츠’지만 금녀의 스포츠는 아니다. 동계올림픽에는 엄연히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이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에는 사상 최초로 한국 여자 대표팀이 출전한다. 정 회장은 “8개 팀이 출전하는 여자부를 포함하면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경기 수가 많다”며 “올림픽 전체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남녀 대표팀의 동반 활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자 대표팀의 세계랭킹은 남자 대표팀과 같은 23위. 랭킹은 같지만 사정은 다르다. 남자 대표팀이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꽤 많이 좁힌 데 반해 여자 대표팀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그래도 사상 처음 대표팀이 꾸려진 게 불과 10여년 전이었다는 것을 알고 보면 눈부신 발전이다. 대표팀은 지난 4월 4부리그 세계선수권에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영국 등 유럽팀들을 잇따라 제압했다.
대한민국 1호 여자 대표팀은 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 때 꾸려졌다. 하지만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에 구색 맞추기로 급조된 팀이었다. 여자 대표팀의 첫 메이저급 국제대회 출전은 2003년 아오모리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영화가 국가대표2다. 수애·오연서·오달수 등이 출연해 대표팀의 좌충우돌 국제대회 도전기를 감동적으로 재연할 예정이다. 주연인 수애는 새터민 출신 선수를 연기한다. 실제로 당시 대표팀에는 북한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황보영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북한과 맞대결도 펼쳤다.
당시 대표팀 멤버 중 유일한 현역 선수로 남아 있는 이규선(32)은 “다른 나라는 카본 소재의 스틱을 쓰는데 우리는 전원이 나무 스틱을 썼다. 장비도 자비로 마련했고 지상훈련은 야산을 뛰는 게 전부였다”며 “그래도 모여서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던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대표팀은 4경기에서 80골을 내주는 동안 한 골을 넣었다.
그랬던 대표팀이 지금은 아이스하키 강국이 부럽지 않은 여건에서 훈련하고 있다. 협회는 2014년 세계 아이스하키 거물인 앤디 머리의 딸 새러 머리(캐나다)를 대표팀 감독에 선임했다. 유망주들의 캐나다 유학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처럼 유럽·미국으로 매년 2회씩 전지훈련을 떠나는 대표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저변이다. 프로나 실업팀은커녕 초중고·대학팀도 하나 없다 보니 대표팀에 뽑을 선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협회 등록선수는 고작 205명(20세 이상은 13명)이다. 한국은 4월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눌렀는데 경기 최우수선수(MVP)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18세 여고생 최지연이었다. 북한은 10여년 전만 해도 대표팀이 10골 차로 지던 높은 벽이었다.
정 회장은 “마침 내년 4월 세계선수권에서 남북 여자 대표팀이 같은 조에 편성됐다. 영화가 흥행하면 세계선수권에 대한 기대도 높아질 테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여자 아이스하키를 보러 평창올림픽을 찾는 관중도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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