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 최다 휴대폰을 한 자리에 모은 폰 박물관이 문을 열어 화제다.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에 자리를 잡은 여주 시립 폰 박물관이 바로 그곳. ‘벽돌폰’으로 불린 초기 휴대폰 모델부터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최근의 스마트폰까지 휴대폰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그곳’을 서울경제 썸이 직접 다녀왔다.
▲ 여강 변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폰 박물관’
여주터미널에서 차로 15분을 달려 도착한 여강 변에 빨간 페인트와 흰 벽돌로 만들어진 이색적인 건물 한 채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거대한 휴대폰 3대가 전면을 장식한 이 곳은 지난 4월 26일 문을 연 ‘여주 시립 폰 박물관’이다.
폰 박물관의 탄생은 이병철 관장이 자신의 집 한 켠을 개조해 전시를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지난 2008년 점동면 당진리에 문을 연 사립박물관이었으나 이 관장이 모든 유물을 시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후 지난 4월부터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 평생 모아온 휴대폰을 소정의 관람료만 받고 전시해 온 것이 폰 박물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장은 “사설 박물관을 계속 운영해오다 관리의 어려움을 느끼던 와중에 여주시 측에서 시립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면 안되겠냐는 제안을 해왔다”며 “혼자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휴대폰에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시의 제안을 수락해 지금의 박물관이 완성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관장은 시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휴대폰을 기증하려고 했을 때는 많이 망설였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손수 키운 ‘자식’과 같은 휴대폰들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던 것. 그러나 더 큰 미래를 위해 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사설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며 “전시하고 있는 휴대폰을 위해서라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초기 ‘벽돌폰’부터 현재 스마트폰까지 ‘총 망라된’ 유일한 박물관
폰 박물관은 총 4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됐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역사관’은 통신의 시발점인 모스 전신부터 유선전화, 무선호출기(삐삐) 등이 전시돼 수백년에 이르는 휴대폰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0세대 휴대폰부터 현대 스마트폰에 이르는 휴대폰의 역사를 한 곳에 모아놓은 이곳에서 이 관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구역은 세계 최초 기록을 가진 휴대폰만 따로 모아놓은 곳이다. 이 관장은 “박물관에 전시된 휴대폰 중 제조사로부터 기증받은 것은 100여점도 되지 않는다”며 “특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휴대폰들은 워낙 그 수가 적어 구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역사관을 쭉 둘러봤다면 바로 이어지는 ‘주제관’이 눈에 들어온다. 최고의 수출폰,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를 맺고 만든 명품 폰, 게임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게임 폰 등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22가지 색다른 주제들로 구성된 이곳은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공간이다.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폰 박물관을 찾았던 직장인 김민수(38)씨는 “디자인이 비슷한 지금의 스마트폰과 달리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화장품 콤팩트’ 모양의 휴대폰 등 굉장히 다양한 휴대폰이 있었다는 것을 주제관에서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나머지 두 개의 관은 박물관을 찾은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직접 휴대폰의 과거와 현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 대형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100가지 휴대전화’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하는 콘텐츠와 35m에 이르는 메모리존에 휴대전화들을 시대별로 부착해 휴대전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옛 향수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으로 구성했다.
▲ 가족의 도움으로 이뤄낸 ‘3,000여대의 유물’
폰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대부분은 이 관장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곡차곡 모은 것들이다.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기증받은 것은 채 100점이 되지 않는다. 이 관장이 처음 휴대폰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하다. 이 관장은 “구형 휴대폰들은 소용이 다하게 되면 분해해 베트남이나 다른 국가들로 부품을 수출해 국내에 남아있는 유물들이 많이 없는 편”이라며 “평소 고고학에 심취해 있던 터에 이렇게 유물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박물관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30년을 휴대폰을 모으는 길을 걸어오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관장이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끊임없는 지원과 격려 덕분이었다. 이 관장은 한 휴대폰을 구하기 위해 적게는 몇 십 만원부터 많게는 몇 백 만원까지 들이다 보니 가정 경제가 어려웠는데 가족들이 자신의 활동을 많이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처음에 휴대폰을 모으겠다고 말했을 때, 첫째 딸이 가장 좋아했다”며 “올해로 38세인 딸이 자신의 추억이 담긴 휴대폰을 모은다는 내 의견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내줘 지금까지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폰 박물관 같은 ‘특이한’ 박물관이 많아지려면...
30년 동안 소중히 모아온 휴대폰들로 박물관을 만들었지만 이 관장은 아직 이루고자 하는 게 많다. 이 관장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산업 박물관’ 형태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깊다”며 “박물관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다루는 곳인데, 왜 농경사회를 다룬 의복이나 청동기 문화의 거푸집 등은 중요하게 다루면서 휴대폰과 같은 산업 사회의 혁명적인 유물은 유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관장은 “스마트폰이 보급화된 지금, 휴대폰은 예전보다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와 같다”며 “휴대폰과 같은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문화적인 소양도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주=이종호기자·주현정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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