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모나 특별한 행동을 인증하고 ‘좋아요’를 받는 데 열정적인 1020 ‘픽미(pick me) 세대’. 최근 젊은이들은 거세게 불고 있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증 열풍을 타고 자신의 일상이나 경험을 찍으며 ‘나를 선택해달라’라 외치고 있다. 이같은 인증 게시물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른다. ‘좋아요’ 수는 유명할수록, 자극적일수록, 스릴이 있을수록 높아진다. 덩달아 ‘인증 문화’는 조금씩 과감해지기도 한다.
‘좋아요’ 인증에 중독된 ‘픽미 세대’ |
최근 중국 젊은층 사이에서는 날씬한 몸매 인증용으로 등장한 아이폰S와 A4용지가 뜨거운 인기다. ‘A4챌린지’로 불리는 인증샷은 A4용지를 허리 라인에 갖다 대 날씬한 허리를 보여주고, 지폐로 손목을 감싸 얇은 손목을 증명한다. 아이폰6는 무릎 위에 올려 얇은 다리를 뽐내기도 한다. 이 인증샷은 중국 전역을 타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등장했다. 인증샷은 아이템이 유행할수록 좋아요, 하트, 댓글이 더 많이 달려 인기 있는 맛집, 네일, 카페 등을 방문해 인증 사진을 올렸을 때 순식간에 1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붙기도 한다.
‘데어데블(대담무쌍한)’이란 단어가 해시태그로 유행할 만큼 아찔한 장면도 있다. 러시아의 한 사진작가는 지난 3월 롯데월드 타워에 몰래 잠입해 610m 높이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서울 상공의 사진을 담았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사진은 무려 14만7,000개의 좋아요와 댓글 851개가 달렸다. 지난해엔 러시아 17세 청년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지붕에 올라 사진을 찍다 떨어져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과도한 인스타그램 열풍에 러시아 정부는 ‘SNS에서 좋아요 100만건도 당신의 생명만큼 값지지 않다’는 소책자를 안내하기도 했다.
국내도 ‘픽미’를 외치는 인증샷 열풍은 마찬가지다. 최근 20대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발간한 ‘20대 인정욕구에 대한 인식 및 실태 조사 리포트’ 결과, 20대 4명 중 1명(25.6%)은 SNS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남들과 다른 인증 사진을 찍으려(25.4%)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스타그램 인기 운영자인 김세연(27·가명)씨는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올려서 해시태그를 붙이면 그 태그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준다.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건데 좋아요가 많으면 내가 잘 공감하고 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개성 없는 인증 열풍은 자아를 ‘주변’으로 밀어내기도
문제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인증 문화가 자칫 잘못하면 왜곡된 인정 또는 공감 문화를 만들어 일종의 강박처럼 개인의 주체성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 있단 점이다. 직장인 윤미영(28)씨는 “사진을 올릴 때 ‘좋아요’를 받고 싶은 욕구와 내가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있다”며 “처음엔 개성있는 사진을 올리다 점차 인기가 있을 법한 사진들을 골라서 올린다. 대중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트렌드를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인증 문화에 속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고등학생 김지연(18)씨는 “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는 애들은 잘 나가는 애들이다. 이성친구 사진을 올리거나 방과 후 놀러 가는 곳, 패션 등을 주로 올린다. 그런 친구들과 비슷한 취향을 가져야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 씨는 “반 친구들이 인증샷에 관심이 쏠려 있다. 쉬는 시간마다 해시태그 유행어 얘기를 하는데 관심이 없어 유행에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직장인 정아진(29·가명)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을 중단했다. 정씨는 “SNS는 백수들이 잘났다고 글을 올리진 않는다. 잘나가는 애들이 올리는 건데 난 충분히 행복한 상태인데도 끊임없이 비교하고 우울해지는 면이 있다. 내 생각을 내가 납득하고 사유하면 되는 건데 왜 굳이 온라인에서 공감 받아야 하나”라고 답했다. 실제로 최근 모바일 리서치회사 케이서베이가 1,01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남성 88%, 여성 87.4%가 SNS를 이용하는데 이중 남성의 48%, 여성의 62.1%가 ‘SNS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는 “현실에서 공감 받고 주변 사람들이랑 잘 소통하고 있는데 온라인에서 인증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고 비판하기도 했다.
■주체성을 지킬 수 있어야 진정한 ‘공감 세대’가 된다
올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셀피(셀프 픽처)는 안된다”며 미국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SNS 인증에 중독된 이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프랑스의 원로 배우 카트린 드뇌브도 SNS 인증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내가 쌓아온 이미지를 시시하고 진부하게 만든다”며 SNS에 중독된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인증 문화의 지나친 개방성과 유행은 자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태훈 KSM 소셜미디어진흥원 대표는 “학생들의 경우 본인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SNS를 접하면 마치 모두가 그런 것처럼 착각해 일종의 마약처럼 빠져든다”며 “유명인들이 멋진 곳에서 SNS 인증하는 보도를 보고 따라하며 유행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대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등 올바른 사용방법 등을 지속적으로 노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걸 증명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말이 아닌, 증거를 남기는 행위. 즉, 밥을 먹어도 스스로 온전히 즐기는 게 아니라 주안점이 남들의 주목과 인정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강박은 인간이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행동에 대한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SNS 인증 문화가 불러오는 구속적인 측면을 우려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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