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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이태원에 여유와 변화를 던져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물 앞뒤로 열린 공간 ...도시에 숨통 터주는 '음악의 寶庫'

현대카드 뮤지라이브러리와 언더스테이지 전경. 앞뒤로 뚫린 뮤직라이브러리의 공간은 길거리 행인들이 건물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건물 뒤편의 풍광을 볼 수 있게 한다.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사진제공=현대카드




장소는 인간의 경험을 통해 그 정체성이 형성되며 특수한 사회와 역사적 관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속에서 특별한 정체성이 형성됐고 지금도 그 의미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0년대 이전 이태원은 주한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퇴폐적으로 변형된 미국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은 한국에서 소위 ‘문화 세계화’의 중심지가 됐다. ‘좀 놀 줄 아는 녀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태원 클럽에 한두 번은 출입해봐야 했고 길거리의 외국인과 ‘헤이-요(hey-yo)!’를 외치면서 어깨 인사 정도는 한 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태원은 지배하는 문화와 사람들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무한한 ‘소비와 배설의 장소’라는 점에서는 1980·1990년대의 모습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이태원은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곳이 아닌 창조해내고 즐기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갤러리 두루, 갤러리 골목, ‘다시서점&초능력’ 등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리고 지난해 완공돼 운영 중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맞은편에 서 있는 ‘스트라디움’과 함께 단지 소비하는 것이 아닌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는 장소로서 이태원의 정체성에 또 다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행인들 눈길 사로잡은 건축물

리셉션 공간 바닥도 경사진 모습

고정관념 비튼 신선한 발상 눈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인사동 쌈지길의 설계자로 유명한 최문규 연세대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가 디자인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뮤직라이브러리’지만 사실 지상 위로 올라와 있는 건물은 그리 크지 않다.

건물 구조를 보면 지상 4층 높이지만 실제 방문객이 이용하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은 2층까지다. 반대로 지하는 주차장을 포함해 5층까지다. ‘도서관’은 지상에 노출된 2층까지이며 지하에는 ‘렌털 스튜디오(연습실)’와 200석 규모의 공연장인 ‘언더스테이지’가 들어서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건물의 절반가량은 ‘라이브러리’ 건물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의 공간은 앞뒤를 ‘뻥’ 뚫어놓았다. 흡사 건물 앞에 지붕이 있는 마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뮤직라이브러리’의 비워진 공간은 도로 옆에 빽빽하게 채워진 건물만 보는 행인에게 잠시 동안의 여유를 갖게 한다.

건물이 들어서는 부지의 경우 초기 계획안에 경사진 지형을 만드는 것이 포함돼 있었고 최 교수는 언젠가 최초의 계획안대로 다시 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사면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건물의 출입공간으로 쓰이는 리셉션 공간의 바닥도 경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최 교수는 “남산에서 내려오는 땅의 모양을 존중한다는 의도로 생각했다”며 “매일 평지만을 만나는 건축에서 경사진 바닥은 약간의 긴장과 즐거움을 준다는 면에서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건물 앞마당의 지붕과 벽면은 빌 오웬스가 찍은 1969년의 롤링스톤즈 공연 사진을 활용해 프랑스의 아티스트 JR이 초대형 그래피티로 재해석한 작품이 감싸고 있다. 이 공연은 자유와 저항을 상징했던 미국 ‘히피’ 문화의 절정이었고 동시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록 음악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중심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의 ‘뮤직라이브러리’도 당시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기대와 바람이 녹아들어 있다.

뮤직라이브러리 내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조그만 입구를 중심으로 바이닐 책장과 턴테이블, 사서의 공간 등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다. /사진제공=현대카드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의 지하에 있는 언더스테이지의 ‘렌털 스튜디오’ 모습. 아래층의 공연장과 천장이 뚫려 공간이 연결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현대카드




●거리 향해 열린 ‘이태원의 쌈지길’

철골 이외 모든 부분이 통유리



길 건너편서도 건물 내부가 훤히

애초 건물은 일정 기간 사용하고 해체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철골을 사용해 전체 건물의 구조를 짰다. 그래서 건물도 화려하다기보다는 차분하고 중성적인 느낌이 든다.

인도에서 건물을 봤을 때 드러나는 부분이 지상 2층에 있는 라이브러리다. 방문객들은 경사로를 따라 1층의 리셉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건물의 철골 이외 부분은 모두 통유리로 돼 있다. 길 건너편에서도 건물 내부가 훤히 내다보인다. 희귀 바이닐과 중요한 자료가 저장돼 있어 건물은 현대카드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도록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적인 통유리는 이런 느낌을 상당히 희석시키고 있다. 마당에서도, 그리고 길 건너편에서도 건물 내부의 수많은 바이닐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건물 외부의 사람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1층에는 6개의 턴테이블과 바이닐을 대여해주는 사서의 공간, 희귀 앨범을 틀어주는 디스크자키(DJ) 공간이 있다. 벽면에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길거리를 마주하는 벽면의 반대편은 초대형 스피커와 희귀앨범이 일부 전시돼 있다. 건물 앞마당을 향한 외벽에는 베란다가 설치돼 있다. 마당에는 공연용 곤돌라가 설치돼 있어 가끔 ‘버스킹(길거리 공연·busking)’이 진행된다. 베란다에 앉아 공연을 지켜볼 수도 있어 베란다는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음악 서적과 한국 뮤지션들의 앨범이 돼 있는 공간으로 올라가려면 철제 난간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계단을 지나 공중에 난 길에 서면 유리창 너머로 주택가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길과 내외부와의 열린 공간은 흡사 축소된 인사동 ‘쌈지길’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 교수는 “쌈지길이 하늘로 열린 마당으로 과밀한 도시에 숨통을 만들었다면 뮤직라이브러리는 지붕은 있지만 앞뒤로 열린 공간으로 도시 속에 여유를 만들려 했다”며 “이러한 점에서 두 건물은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 뮤직라이브러리의 색다른 지하공간 ‘언더 스테이지’

엘튼 존도 반한 ‘스테이지’...음악·예술공연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지하 2층에 있는 ‘언더스테이지’ 공연장. 지하 1층의 렌털 스튜디오와는 천장이 뚫려 있어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카드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물은 지하에 ‘언더스테이지’라는 거대한 공간을 감춰두고 있다. 이곳은 현대카드가 정기적으로 국내외 음악가와 공연 예술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하는 곳으로 이미 이태원의 유명한 명소가 됐다.

유명 배우와 가수·음악가가 큐레이터로 참여해 공연을 기획해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뮤지컬, 비보잉 공연, 패션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신중현 그룹, 전인권, 혁오 등 국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영국의 엘튼 존 역시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언더스테이지는 두 개 층을 사용하는데 위는 렌털 스튜디오로 사용하며 아래층은 공연장이다. 공연장과 렌털 스튜디오는 중앙 천정이 뚫려 있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렌털 스튜디오는 일반 관람객은 출입이 제한된다. 2개의 연습실과 1개의 녹음실이 있고 공간 구석에는 사람이 쉴 수 있도록 소파 등이 설치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렌털 스튜디오 벽면에 걸려 있는 담벼락 아트로 유명한 ‘빌스(Vhils)’의 아트피스다. 빌스의 아트피스는 지상 라이브러리의 2층 가장 높은 벽면에도 설치돼 있다. 빌스의 작품뿐만 아니라 건물의 곳곳에서는 때로는 고급스럽고 때로는 트렌디하고 가끔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갖가지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건축 설계는 최문규 연세대 교수가 담당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은 겐슬러(Gensler)에서 맡았다.

공연장은 스탠딩 공연일 경우 500명, 의자를 놓을 경우 200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 않은 공간이다. 오히려 지상의 라이브러리 규모를 생각한다면 지하의 공연장은 거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장 뒤편에는 음향을 담당하는 콘솔 박스와 함께 공연을 즐기면서 음료수 등을 마실 수 있는 스낵바 공간도 마련돼 있는 등 편의적인 면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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