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받아내지 못한 범죄수익 추징금이 25조원을 웃돌고 있다. 특히 추징한 금액에서 실제로 받아낸 집행 금액의 비율은 0.1%대에 불과해 제도 개선이 절실한 실정이다.
11일 법무부 산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범죄수익의 동결과 박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8월 현재 집행이 이뤄지지 못하고 쌓여 있는 추징금은 25조2,176억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집행된 추징금은 398억원 수준으로 집행률은 0.16%에 그쳤다. 2013년 이전 5년간 추징금 집행률이 가장 높았던 해도 0.57%에 머물러 1%를 넘지 못했다.
범죄수익 몰수란 범죄행위로 직간접적으로 얻은 모든 재산을 박탈해 국고에 귀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형사재판에서 재판부가 피의자 범죄수익을 대상으로 추징을 선고하고 검찰이 이를 집행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낮은 추징금 집행률의 원인을 입법 공백에서 찾고 있다. 국내 추징제도 곳곳에 허점이 뚫려 있다는 말이다.
현행법에서는 일반인 몰수 대상자나 추징금 미납자에 대해서는 검찰이 금융거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한 압수수색이나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은닉재산을 찾을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추징 미납금 25조원 가운데 23조358억원이 민간인인 김우중 등 대우 관련 임직원에게 부과된 추징금이다. 10대 고액 추징금 미납자 가운데 공직자 출신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집행률이 24%지만 일반인 9명의 집행률은 각각 0.4%에도 못 미친다. 2013년 일반인 추징금 미납자도 공직자 출신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금융·조세 정보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김우중 법’이 논의됐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법률만으로는 몰수 추징금 징수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판 선고와 함께 추징금 형이 내려짐에 따라 피의자가 형사입건 후 형 확정까지 수개월 동안 재산을 은닉하거나 처분하면 추징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절차를 확대하거나 공소 제기가 없더라도 몰수를 청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힌다. 숨어 있는 자금을 찾더라도 범죄 관련성을 입증하도록 하는 현행법 체계상 실제 추징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에 검찰을 중심으로 불법 의심 자산이 나왔을 때 합법 여부를 피의자 측에서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프랑스 모델이다. 프랑스에는 돈세탁으로 의심되는 거래가 있으면 불법적인 수익으로 추정하고 피의자 쪽에서 범죄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범죄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서 수사 과정에서 불법 범죄 수익으로 추정되는 돈을 발견하더라도 피의자가 출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결국 반환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며 “프랑스처럼 추정 규정이 있다면 별다른 조치 없이 범죄 수익을 반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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