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검찰청·법원 자리는 원래 부사가 살던 곳이에요. (이웃한) 강진에는 군수가 살았는데 장흥에는 종4품 부사가 살았어. 구 교도소자리 터에는 벽사역(驛)이 있어서 파발마들이 있었지. 그곳은 종6품 관리가 거하던 찰방역이야. 순천 등에 9개의 작은 역을 거느리던 큰 역이었어. 찰방역장은 종4품 부사 못지않게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어. 부사는 장흥만 관할했지만 찰방은 사방의 관할 역사까지 영향을 미쳤어. 근처의 회진에는 바다를 관할하는 만호가 살았고요. 이래저래 장흥에는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가 셋이나 있었어. 조선말기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수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백성들의 저항이 심했고 동학이 일어났을 때 세력이 성했던 이유야. 그후 관군과 왜군이 와서 동학군을 토벌하고 뿌리를 뽑았어. 3·1운동 때 장터에서 만세를 못 불렀을 정도였다니까. 장흥은 그런 역사가 있는 곳이야. 그런 역사적인 배경에 자연환경까지 더하고 있지. 앞에 바다가 있고 시내 중심에 탐진강이 흘러. 천관산·억불산·제암산이 있어서 문학이 성할 수 있는 환경이 충족된 거야. 송기석·이승우·이청준 등 유명한 작가들이 배출된 것이 이상할 게 없지.”
서울의 정남쪽에 있는 장흥을 찾은 김에 한승원 선생댁을 방문해 전라남도 장흥이 ‘문향(文鄕)’인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작가 한강이 태어난 곳은 광주지만 아버지인 작가 한승원의 고향은 장흥이고 아직도 장흥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장흥 곳곳에는 문학의 향기가 스며 있다.
그중에서도 기암괴석과 억새평원으로 명성이 높은 천관산(天冠山·723m)은 장흥 문학의 정신이 깃든 곳이자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다. 천관산은 부처바위·사자바위·기바위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차를 타고 장흥으로 진입하다 보면 먼발치로 천관산이 보이는데 9부 능선까지는 밋밋하고 완만한 선이 이어지지만 정상 부근에서는 톱니 같은 바위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두리뭉실한 곡선의 절정에서 날카로운 예각의 봉우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관산은 산세가 뛰어나 지제산(支提山)·천풍산(天風山)·신산(神山)등으로도 불려왔다.
천관산은 지난 1998년 전라남도가 도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지리산·내장산·월출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전남 일원의 모든 산과 멀리 제주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천관산 주변에는 신라 통영화상이 창건했다는 천관사와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 존재 위백규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이 수학했던 장흥 위씨 제각인 장천재, 동백 숲과 비자림 숲으로 유명한 천관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이청준·한승원 등 수많은 작가를 배출한 장흥은 ‘정남진 장흥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돼 있다. 장흥군 내의 대덕읍 연지리, 관산읍 삼산리·방촌리, 안양면 기산리 등이 특구에 속하는데 면적은 58만㎡에 이른다. 천관산문학공원을 비롯해 천관문학관, 기양사, 장천재, 탐진강의 정자들, 이청준 문학자리, 한승원의 달 긷는 집, 회진, 덕도, 신덕리 등등 곳곳에서 장흥의 문향을 느낄 수 있다.
장흥 출신 문인들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다수 실려 있다. 대표작으로는 이청준의 수필 ‘이야기 서리꾼’과 ‘아름다운 흉터’, 이대흠의 시 ‘동그라미’, 이성관의 동요 ‘반딧불’ 등이다. 장흥군 대덕면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등단한 한승원은 ‘포구의 달(1983)’, ‘불의 딸(1983)’, ‘아제아제 바라아제(1985)’, ‘해산 가는 길(1997)’을 잇따라 발표하며 장안의 지가를 높였다. 20년 전 낙향한 그는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고 이름 붙인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집 근처 한승원문학산책로에는 600m의 해변에 20m간격으로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29일부터 정남진 장흥 물축제
살수대첩 등 육상·수상 이벤트 다양
야간 워터풀·EDM 파티 새롭게 마련
장흥에는 ‘여름이郡(군) 더우面(면) 가里(리) 물축제 1번지 장흥으路(로)’라는 모토를 내건 물축제가 피서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29일부터 8월4일까지 장흥읍 탐진강 수변공원과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펼쳐지는 물축제는 거리 퍼레이드 살수대첩을 시작으로 다양한 육상·수상 이벤트들이 펼쳐진다. 특히 올해는 야간 워터 풀파티와 EDM 파티 등 한여름 밤을 흥겹게 보낼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까지 마련돼 있다.
/글·사진(장흥)=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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