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 모시고 동생이랑 다 같이 왔어요. 어르신 모시고 갈 수 있는 여행이 뭐가 있을까 찾다 보니까 서해금빛열차에서는 뜨끈한 온천수에 족욕을 할 수 있더라고요. 이렇게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온돌실도 있고요. 그야말로 대청마루에 걸터앉은 기분이에요.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데요? 호호호” -서울 거주 정윤덕(54)씨.
기차는 낭만을 품고 달린다. 차창은 하나의 액자가 되어 시시때때로 새로운 풍경을 담아낸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란히 앉아 열차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면 기차 특유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열차 특유의 리듬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여행객들의 설렘을 배가시킨다.
기차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여행의 모든 과정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온 가족이 두 다리 쭉 뻗고 떠나는 온돌마루실부터 달리는 열차에서 즐기는 개운한 족욕탕까지 서해금빛열차를 타면 로망이 현실이 된다.
서해금빛열차는 아산, 예산, 홍성, 보령, 서천, 군산, 익산 등 서해 지역의 보물 같은 관광지 7곳을 지난다. 금빛으로 물든 열차에 올라타면 서해를 한발 먼저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다 물결을 형상화한 통로 바닥, 모래사장에 그린 하트 프린팅 등 열차 곳곳에서 서해의 정취가 묻어난다. 가는 내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다. 반지 만들기, 풍선 아트, 마술공연 등 승무원들이 매일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인다. 볼거리, 즐길 거리를 가득 싣고 달리는 서해금빛열차의 찬란한 매력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영상 배경음악 summer84 EIGHTY4 NEON NITECLUB / CCL : cc-by, cc-sa |
세계 최초 온돌마루실, 여름엔 시원한 대청마루 겨울엔 뜨끈한 아랫목으로 변신
호남선의 첫 번째 관광 열차인 서해금빛열차에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온돌마루실이 있다. 단아한 미가 돋보이는 전통문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랑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한옥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객실답게 한지 느낌이 물씬 나는 노리개 문양의 벽지와 편백 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것질거리를 올려놓을 아담한 탁자를 가운데 두니 아늑한 분위기가 감돈다. 1실당 최대인원은 6명. 꽉 채워 이용하면 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 걸. 기자가 탄 객실을 두고 왼쪽에는 6인 가족이 오른쪽에는 고등학교 동창끼리 여행을 간다는 40대 주부 여섯 명이 자리 잡았지만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돌마루실을 이용한 정상희(47)씨는 “어르신들은 의자에 오래 앉아 계시면 불편하신데 이렇게 다리를 쭉 펴고 여행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씨는 “등이나 한옥식 문, 노리개 장식의 벽지가 어르신들께 신혼 첫날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 같다”며 “따뜻한 온돌도 꼭 느껴보고 싶다. 겨울에도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네 살배기 딸 아이를 데리고 탑승한 김하나(34)씨 부부 역시 “(일반실 대비)표 값으로 3만원이 더 들었지만 그 값어치 이상을 한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김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아이에게 아무리 주의를 줘도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며 칸막이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3인부터 최대 6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온돌마루실은 단 9실뿐이다.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맘때 이용하려면 한달 전부터 서둘러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7월 중순부터 열리는 보령머드축제도 서해금빛열차 인기에 한 몫한다. 축제가 열리는 대천역에 정차하기 때문. 덕분에 ‘외국인 선호도 1위’라는 보령머드축제의 막이 오른 지난 15일 열차 곳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푸른 눈의 프랑스 관광객 미쉘(30)씨는 “머드축제에 가려고 티켓을 끊었는데 타고 보니 서해금빛열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미쉘은 3호차 카페칸에서 진행 중인 장미 반지 만들기를 체험하며 “참여할 수 있어 더 즐겁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승객 루이(34)씨도 “보령머드축제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서해금빛열차는 처음이다. 퀴즈 이벤트도 있고 포토존도 마련돼있고 즐길 거리가 많은 열차라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장미 반지 만들기부터 피로 날리는 족욕탕까지…이색 이벤트 풍성
서해금빛열차에서는 어린아이를 위한 풍선아트, 페이스 페인팅은 물론이고 마술, 노래, 악기공연에 이르기까지 매일 색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탑승객의 안전과 재미를 동시에 책임지는 서해금빛열차 승무원들은 고객의 즐거움을 위해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근무한 지 2년 3개월째라는 승무원 송민영(25)씨는 “승객 비율에 따라 이벤트가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여성 승객 비율이 높으면 장미 반지 만들기, 어린이가 많으면 풍선아트, 중장년층이 많으면 악기나 노래공연을 펼치는 식이다. 이 날은 와이어로 장미 반지 만들기 이벤트가 열렸다. 자신의 손가락에 꼭 맞는 꽃반지를 선물 받은 승객들은 인증샷을 찍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긴 줄을 기다려야 차례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짜증 내는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누가 먼저 왔느냐고 물어가며 승객들은 자발적으로 차례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이벤트 참여를 위해 카페칸인 3호차를 찾았다면 한 켠에 마련된 족욕탕 체험을 권한다. 습식족욕과 건식족욕 중 취향에 따라 선택한 후 탁 트인 차창 너머로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면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도고 온천수가 가득 담긴 따뜻한 탕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싹 풀린다. 예매한 열차를 놓쳐 울며 겨자먹기로 탑승하게 됐다는 대학생 한예지(20)씨는 ‘대만족’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남자친구와 군산 여행길에 올랐다는 한씨는 “열차를 놓쳐서 속상했는데 좋은 추억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제일 빠른 기차를 알아보다가 리뷰가 좋아서 결제했는데 잘한 일 같다”며 빙긋 웃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이라면 2호차와 3호차 사이에 마련된 포토존을 둘러볼 만하다. 2호차 출입문을 닫고 낚싯대를 움켜쥔 포즈를 취하면 월척을 낚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이 더 잘 나올 수 있게 조명을 추가로 설치한 덕분인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송 씨는 “가족단위 승객들에게 인기가 많긴 하지만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님이 더 좋아하신다”고 넌지시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던 어른들 사이에서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여행이 주는 설렘에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티없는 모습이었다.
귤 꾸러미와 삶은 계란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동심을 되찾게 만드는 기차여행, 올 여름엔 서해금빛열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영상=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서해금빛열차는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장항선을 따라 서해 7개 지역을 도는 관광전용열차다. 서해금빛열차는 오전 8시27분 용산역을 출발해 아산ㆍ예산ㆍ홍성ㆍ보령ㆍ서천ㆍ군산ㆍ익산에 정차한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1회 왕복 운행한다. 관광열차를 알차게 이용하려면 여행패스 상품을 눈여겨 볼만하다. 관광열차가 포함된 패스상품은 나드리패스, 365미즈레일 등이 있다. 나드리패스는 자유입석권과 좌석지정권 두 종류이며 이용기간에 따라 2일권, 3일권으로 나뉜다. 가격은 어른 기준 5만~10만원. 365미즈레일은 만 30~65세 미만 소그룹 여성을 위한 주중 관광열차 전용상품이다. 3인 기준 9만9,900원으로 저렴한 비용 덕분에 승객들의 관심이 높다. 이틀간 편도 2회 이용할 수 있다.
△온양온천
전통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등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한 바퀴 휘 돌며 고즈넉한 매력을 느꼈다면 계절과 상관없이 활짝 핀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세계꽃식물원으로 가자. 꽃식물원 내부에 위치한 앵무새 체험관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온양온천까지 왔는데 온천욕을 빼놓는다면 앙금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뜨끈뜨끈한 도고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피로는 싹 가시고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개운한 기분이 든다. 당일치기 힐링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예산
문화이야기가 있는 관광을 원한다면 예산으로 떠나자. 고고한 선비정신이 흐르는 추사고택, 덕숭산 수덕사, 물좋은 덕산온천을 도는 알찬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나고 자란 추사고택에서는 조선 명문가 전통가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추사의 예술혼이 깃든 36칸짜리 고택의 멋을 충분히 느꼈다면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 수덕사를 방문해보자. 국내 최고의 목조건물 대웅전이 자리해있다. 덕산온천은 예산이 자랑하는 청정온천수로 관절염, 신경통에 효과가 좋다고 입소문이 자자하다.
△홍성
역사책에서만 봤던 홍주성은 조선 초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건설된 서해의 관문이다.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동학농민항쟁 등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성곽 둘레길을 걸으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천수만의 비경이 펼쳐진 속동전망대에 올라서면 탁 트인 바다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홍성 8경중 제6경인 남당항, 제4경인 그림이있는정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그림이있는정원은 온실, 야생화원, 미술관, 전망대 등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수목원답게 산책코스로 일품이다. 매 4일, 9일에 광천을 방문한다면 지역 특산물인 활성암반토굴 새우젓을 만날 수 있는 5일장도 체험할 수 있다.
△보령
여행에 먹는 재미가 빠질 수는 없다. 대천항 수산시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서해안에서 나는 다양한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싱싱한 활어회 한 점에 시원한 꽃게탕 한 입이면 바다가 입으로 들어온 듯하다.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면 물놀이 할 시간이다. 7월에 대천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국내 대표 여름축제인 ‘보령머드축제’도 즐길 수 있다. 진흙탕에서 맘껏 뒹굴고 바로 앞에 위치한 바닷가로 달려나가면 된다. 대천해수욕장에서는 와이어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가르는 짚트랙도 체험할 수 있다.
△장항
자연에 관심이 많은 자녀와 함께라면 생태의 보고 서천 에코투어를 추천한다. 한산 모시가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한산모시관에서는 우리 민족의 청백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시원한 바다와 송림이 우거진 솔 바람길 산책과 아찔함을 선사하는 장항 스카이 워크도 대표코스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생태 전시공간 국립생태원도 근거리에 있다. 축구장 92배 면적으로 세계 5대 갯벌지역에 건립되어 있다.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지역을 이곳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군산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군산이 제격이다. 전국 최대 근대문화중심도시인 군산 신흥동을 방문하면 일본식 가옥을 둘러볼 수 있다. 국내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걸어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면 골목골목 담긴 옛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군산역사박물관을 추천한다. 군산여행이 인기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주 한옥마을이 가깝기 때문. 차로 1시간이면 태조의 초상화가 있는 경기전, 한옥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동성당이 위치한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다. 관광을 마치면 바게트 버거, 교동 고로케, 수제 초코파이를 먹어 보자.
△익산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는 익산을 대표하는 유적지다.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엄청난 규모의 호국사찰이다. 찬란했던 그 때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증강현실 프로그램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상으로 복원된 미륵사를 만날 수 있다.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난 생가도 둘러볼 만하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정자와 연못에는 은은한 멋이 있다. 선비 가옥 특유의 숨결과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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