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밤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 영수회담을 끝내 철회했다. 추 대표가 이날 오전6시30분께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하자고 제안한 지 14시간 만이다. 추 대표는 국민의당 등 야당 대표를 배제한 ‘나 홀로’ 영수회담을 추진했다가 야권과 여론의 반발에 못 이겨 청와대가 수용했던 영수회담을 철회해 체면을 구기게 됐다.
추 대표는 이날 오전6시30분께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에 전화를 걸어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를 원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추 대표는 이후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아침 제1야당 대표로서 청와대에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만남이 필요하다고 긴급회담을 요청했다”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을 포함해 대통령 곁에서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제1야당 대표가 민심을 전달하고 오겠다”고 밝혔다.
추 대표의 깜짝 선언으로 당내는 술렁였다.
추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나 의원총회 등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영수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추 대표의 전화를 받았던 우상호 원내대표조차 영수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건넸을 뿐 추 대표가 이날 오전 영수회담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오전9시 최고위원회의 직전 알게 됐다.
민주당 최고위 직후 청와대가 오전10시께 영수회담을 수용했다. 영수회담이 확정되며 당내 반발이 계속 터져 나오자 우상호 원내대표는 3선급 중진 의원들과 긴급 오찬 회동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추 대표가 영수회담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오찬 이후 노웅래 의원은 “민주당 혼자 영수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 하더라도 야권 공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중진이 추 대표가 당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우상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오후4시께 의원총회가 열리자 의견은 크게 3가지로 분산됐다. 이미 추 대표가 제안하고 청와대가 수용한 만큼 영수회담을 통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과 아예 영수회담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 야 3당과 함께 영수회담에 나서야 한다는 등이다.
도종환 의원은 “공당의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철회하면 당의 신뢰도에 금이 간다”고 주장했고 이인영 의원은 “영수회담을 우선 철회하고 연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원총회를 거칠수록 영수회담을 무조건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자 결국 추 대표는 영수회담 철회를 전격 결정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통해 박 대통령의 하야 등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추 대표는 철회 결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을 퇴진해야 한다는 총의가 모였다”며 “촛불 민심을 읽지 못하는 대통령을 만나 민심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민주당이 당론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확정한 만큼 의사가 전달됐다고 판단해 철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식을 접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추미애 대표의 청와대 단독회담 철회를 환영한다”며 “추 대표의 결단은 100만 촛불민심을 확인한 것으로 이러한 결단은 공고한 야 3당 공조를 확인하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이 뒤늦은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두 야당 수장 간 신뢰는 금이 갔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추 대표의 양자 영수회담에 대해 “추미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야권 공조의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당과 끈끈한 공조를 맺어왔던 박원순 서울시장도 추 대표에 대한 일침을 쏟아냈다. 박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참 답답하고 한심하다”며 “추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뜬금없다. 이미 국민이 탄핵한 박근혜 대통령과 무슨 대화를 하고 협상을 하느냐”고 꼬집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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