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재미졌지만 저는 웨스 앤더슨 감독들의 전작들을 더 좋아합니다. 제 겸손한 DVD장에서 단일 감독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이시죠. 왼쪽부터 초기작 ‘러쉬모어(국내용 제목은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이런 무성의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러블리했던 ‘판타스틱 미스터폭스’, ‘다즐링 주식회사’입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전작들과는 달리 국내에서 꽤 인기를 끌자 왠지 이런 느낌도 들더군요. 나만 아는 마이너한 가수를 남들도 갑자기 막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왠지모를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그런 중2스런 감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게다가 전작에선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관련 굿즈들이 막 나오는데!!!그건 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렇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폰케이스를 쓰고 있죠.
웨스 앤더슨 감독은 세트장 제작과 영상미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붓죠.
강박적으로 좌우대칭이나 비율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집착한 만큼 영화의 때깔이 무지막지하게 좋습니다. 세트만 봐도 눈이 즐거우니까요. 우리나라 사극 세트장 관광상품으로 쓰듯이 웨스 앤더슨 영화 세트들도 역사의 유물로 보존했으면 좋겠습니다(사심 가득ㅠㅠ)
그리고 웨스 앤더슨 영화에 등장하는 엄청난 배우들! 대학생 시절부터 소울메이트였던 오언 윌슨,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하는 빌 머레이 아저씨, ‘판타스틱 미스터폭스’에서 성우로 출연하는 조지 클루니, ‘문라이즈 킹덤’에선 브루스 윌리스가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선 배우를 아낌없이 털어넣죠(?;;). 레아 세이두가 하녀로 분해 단역 출연하고 빌 머레이, 오언 윌슨, 하비 케이틀 이런 쟁쟁한 분들이 막 한두 장면 나오고 끝나는 겁니다. 흥행 안됐으면 어쩔뻔?
미장센이나 출연배우를 떠나 제가 웨스 앤더슨 감독을 좋아하는 건 매 영화마다 거의 똑같이 등장하는(칭찬인가 욕인가) 캐릭터들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무심한 해양학자 스티브 지소, 가족이되 한없이 남 같은 테넌바움 일가, 아버지의 장례를 놓고도 티격태격 싸우기만 하는 ‘다즐링 주식회사’의 삼형제.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망나니들 같죠. 하지만 그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절망한 끝에 먼저 다가서길 두려워하는, 겁 많은 사람들입니다. 항상 무표정하게 초연한 척 하고 있을 뿐이죠. 웨스 앤더슨 감독이 어린 시절 겪은 부모님의 이혼이 아마 이런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을 듯하구요.
이런 유형이 실제로 친구라면 다소 피곤하긴 합니다만(귀찮지만 알고 보면 착한 놈이라 챙겨주게 됨) 영화 아닙니까. 공감하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내 일처럼 훈훈해집니다. 특히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은 비극적인 터치가 더해지면서 한층 더 사랑스러운 작품이 됐죠.
저는 이만 웨스 앤더슨 영화 포스터 직구나 하러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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