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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중세시대로 퇴보한 국가권력체계

민병권 정보산업부 차장

민병권 차장




“형님, 류우익 대통령 실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VIP(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에게 조언하셨다죠?”

“아니, 그걸 자네가 어찌 아누? VIP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한 얘기인데.”

“어찌 알기는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요.”

지난 2008년 어느 날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친분 있는 인사와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다. 당시는 광우병 파동 등으로 민심이 이명박(MB) 정권에 대한 반감을 폭발시키던 때였다. 홍 원내대표는 작심하고 대통령과의 독대를 청했다. 정국 수습을 위해서는 정권 실세임에도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류 실장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고언을 하러 나선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과 둘 사이에 나눈 대화 내용이 불과 며칠 만에 외부에 알려졌다고 하니 당사자로는 아연실색할 일이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독대할 경우에는 대화 내용을 다 녹취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더라고. 그 녹음 내용을 관리하는 게 대통령실장이었던 거야. 류 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독대 내용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나만 몰랐지.” 홍 원내대표가 이후 기자와 만난 사석에서 풀어낸 후일담이다.

대통령의 업무에 대해서는 이처럼 사생활이 없을 만큼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감시가 이뤄진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오남용을 막기 위한 내부 통제체계다. 내부 통제가 무너지더라도 현대국가에는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있다. 3권분립 원칙에 따른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 ‘박근혜 게이트’로 비화된 이번 사태는 현대적 민주국가 시스템조차 최고 권력 앞에서는 무력함을 보여줬다. 청와대 내부 통제의 최전선에 선 김기춘 전 대통령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권력형 비리를 막기는커녕 방조하거나 영합했다는 논란을 사고 있다. 의회에서는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기보다는 민의를 가리는 ‘차벽’을 자처하고 나섰다. 사법부 역시 문제를 파헤치려던 일부 청와대 참모 등을 궁지로 몰아넣어 비리 은폐에 일조한 전력이 있다. 3권이 영합하고 종교인(역술인 최순실)이 국정에 관여했으니 현대국가는커녕 3권분립, 정교분리 원칙이 확립된 근대국가 이전으로 국가 권력 시스템이 퇴보한 꼴이 됐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우선 3권분립의 견제장치들이 왜 작동을 제대로 안 했는지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풀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개각 논의가 이뤄진다면 분권형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어떤 정치 시스템을 도입해도 단순히 기득권 세력의 밥그릇 나눠 먹기로 변질될 것이다. 오히려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권력형 부패 위험에 더 취약할 수도 있다. 형식적이나마 업무 기록을 남기고 공식 통제가 이뤄지는 청와대에 비해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밀실 논의나 비공식 업무 진행 같은 사각이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국정조사는 단순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특검과 달리 보다 심층적이고 제도적인 시각에서 사태를 진단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해법 모색 역시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분야까지 정교하게 아우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보통신기술(ICT)을 권력형 부패 견제를 위한 기록 및 내부 통제에 응용하는 방안 등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문을 연 단서가 된 것도 스마트폰·통화녹음 같은 ICT 시스템이었다.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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