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시장경제지위’ 부여를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며 중국에 대한 관세보복을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주요2개국(G2)의 통상 문제에 대한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중국 입장에서는 무역 협상에서 감수해야 할 타격이 크다. WTO는 협정문에서 ‘비시장경제국’에 다른 회원국이 반덤핑관세를 쉽게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과 함께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유럽연합(EU)은 이 조항을 활용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시행 중인 반덤핑관세 67건 중 52건을 중국산 제품으로 설정해놓았다. 따라서 중국은 다음달 시장경제지위를 획득해 자국산 제품이 더 이상 무역에서 반덤핑관세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부여에 부정적인 속내는 자국 경제 대한 타격 우려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은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제품들이 저가로 수입될 가능성이 높은 철강업계다. 일각에서는 중국산 철강이 미국에 관세 없이 수출될 경우 철강업계에서 40만~60만명이 실직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특히 중국이 시장경제지위를 얻게 되면 철강재뿐 아니라 다른 중국산 제품의 유입도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제조업협회연합(AEGIS)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면 EU 경제가 2% 퇴보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도 최대 350만 개가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EU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 12일 유럽의회는 “중국은 시장경제국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며 시장경제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또 유럽의회는 EU 집행위원회에 다른 나라들과 협조해 이 문제에 대처하라고 요구했다.
무역 문제에서 중국에 부정적인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이 가까워지면 G2 간 갈등은 더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무역에서 중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며 집권하면 환율조작국 지정은 물론 중국산 제품에 45%까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서는 중국도 경고를 여러 차례 날렸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장상천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부 부대표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끝난 ‘27차 미중상무연합위원회’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취임 이후 미국이 WTO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부대표는 “WTO 회원국인 중국도 (WTO 규정에 따라) 회원국이 누리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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