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덕질 품목은 차(茶, tea)입니다. 워낙 세상은 넓고 덕후가 많아 저의 소소한 취미생활은 그들의 덕에 이르지 못하지만, 최근 꼭 소개하고 싶은 차가 생겼거든요.
일단 저는 열광적인 차 매니아는 아닙니다. 중국어 전공이라 북경에서 연수하면서 잠시 맛을 들였지만 귀찮더군요. 그래서 가끔 겨울에 내킬 때 잎차를 우려먹는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티백. 해외 출장갈 때마다 꼭 마트에 들러 사 온 티백들이 대부분이었죠. 겨울에는 홍차 녹차 허브티 등을 주로 마시고 목마른 여름에는 과일향 등이 가향된 차를 우린 후 얼음을 잔뜩 투하해 시원하게 마십니다(냉침이라고 하죠!). 아래 사진은 최근 저의 차 라인업입니다. 독일과 베트남과 중국 출장에서 직접 사온 차, 직구한 차, 선물로 받은 차.
그러다 지난달쯤, 웹서핑하다 우연히 티게슈(Teegschwendner)라는 독일 차 브랜드를 알게 됐습니다. 티게슈벤드너인지 티게슈벤트너인지 궁금했는데 독일 티게슈 TV 광고를 찾아본 결과 티게슈벤트너로 발음하는 듯하더군요.
티게슈는 독일의 차 전문 브랜드입니다. 1978년 설립돼 지금은 미국 등 7개국에 진출해 있다네요. 2008년 세계 차 박람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도 합니다. 독일 브랜드답게 편안하고 실용적이고 그러면서도 맛있는 분위기입니다.
티게슈 TV 광고입니다. 독일어지만 뭔 얘긴지 알 것 같죠? 우리나라가 맥심이나 카누 광고하듯 저 나라에선 잎차 브랜드를 광고합니다. 부럽습니다….
국내 배송에 비해 배송비도 적지 않으니 이왕이면 한 몇 가지 주문해봤습니다. 대학교 때 학교 앞 찻집에서 종종 마셨지만 어쩐지 지금은 구하기 힘든 밀크우롱(우롱차인데 고소한 우유향이 납니다), 그리고 어느 블로거가 인생 최고의 차라고 울부짖은 ‘크림’입니다. 독거 싱글이다보니 많은 양이 필요없어 우선 종류별로 100g씩 주문해 봅니다.
총 300g의 가격은 23.4유로(약 2만9,500원). 직배송도 가능하지만 저는 배대지 업체의 쿠폰이 있어 배대지를 통해 배송받았습니다. 쿠폰을 먹인 결과 배송비는 14달러(약 1만7,000원). 차 가격과 배송비까지 합해 4만6,000원쯤 든 셈입니다. 스타벅스의 톨사이즈 아메리카노 12잔 정도 마시는 가격이네요. 잎차 좀 드시는 분이면 아시겠지만 차 300g이면 하루 두 잔씩 마셔도 반 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주문한 후 11일이 지나 기다리던 택배박스가 도착했습니다. 차 세 종류와 맛보기용 진저브레드티, 찻숟갈이 부록으로 왔네요.
저는 그동안 가향차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는데요. 예를 들어 한 십여년 전쯤 국내에도 진출했다 망한 일본 가향차 브랜드 ‘루피시아’도 그랬고 별로 어른의 차(죄송합니다 어른스러운 척)는 아니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티게슈의 이 차들은! 이 차님들은!! 신세계였습니다.
구운사과는 딱 생각했던 그런 느낌의 향이었습니다. 그보다도 크림은 정말 위의 저 블로거님께 감사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죠. 차가 이럴 수 있구나,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지인들에게도 마구 시음시킨 결과 하나같이 감탄하더군요. 그렇게 먹이고 나눠주다 보니 100g따위 금방 사라져서 곧 제 것과 지인 선물용까지 넉넉히 재주문할 예정입니다.
워낙 티게슈 차의 종류가 많다 보니 앞으로 1, 2년은 여기 차만 마셔도 끝이 없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메모해 둔 다음 차 후보는 ‘스트로베리 크림’, ‘문 팰리스’, ‘버터밀크와 레몬’, ‘크림 카라멜’, ‘루바브 크림’, ‘그린 코코넛’, ‘메이플’ 등입니다.
차 이름부터가 너무나도 차덕심(茶덕心)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여러분. ‘소공녀’, ‘작은 아씨들’, ‘빨간머리 앤’ 을 읽으면서 달콤한 이국의 맛을 상상하던 어린시절이 떠오릅니다. 당밀 입힌 사탕, 폭신폭신한 흰 빵, 케이크나 파이 같은 것들요. 물론 지금은 해물전이나 간장게장이 더 좋습니다만(…).
이번 겨울 저는 사랑스러운 차와 함께 소소한 취미생활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만화책+차, 영화+차, 레고+차, 퍼즐+차, 즐거워보이지 않습니까. 모든 덕질과 차는 잘 어울리는 듯하네요. 그리고 크림향, 구운사과향이 감도는 속에서 가끔은 저의 지나온 인생을 반성해보고 미래도 꿈꿔볼 것 같습니다. 동화를 읽던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요.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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