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36·스위스), 라파엘 나달(31·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30·세르비아), 앤디 머리(30·영국). 세계 남자테니스계에 이들 4명이 이룬 ‘빅4’ 체제가 자리 잡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올 시즌 테니스의 관전 포인트 중 첫 번째는 단연 이 빅4 체제의 변화 여부다. 빅4 체제가 더 공고해질지 아니면 새로운 양강으로 축소될지, 그것도 아니면 빅5 이상으로 확대될지가 이번 시즌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17 테니스는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본격 돌입한다.
빅4 중 가장 큰 변수는 페더러다. 세계랭킹이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17위로 떨어진 탓에 ‘언제 적 페더러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테니스팬들은 페더러의 이름 앞에서 ‘테니스황제’ 수식어를 떼는 데 주저한다. 골프계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재기를 간절히 바라듯 테니스계도 새로운 스타의 등장만큼이나 페더러의 부활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마침 ‘절친’ 사이인 페더러와 우즈는 비슷한 시기에 진정한 부상 복귀전을 치른다. 우즈는 26일 개막하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공식 컴백한다. 지난달 비공식 복귀전에서 우즈는 출전선수 중 가장 많은 버디를 잡았다. 이번에는 페더러가 응답할 차례다.
무릎 부상으로 지난해 7월 시즌을 조기 마감했던 페더러는 “6개월은 긴 시간이지만 20년의 커리어와 비교해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다. 준비는 끝났다”며 공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호주오픈은 페더러가 네 차례나 우승한 대회다. 다만 2010년이 마지막 우승이었고 가장 최근 메이저 제패도 2012년 윔블던이다.
페더러는 이번 대회에서 낮은 세계랭킹 탓에 강자들을 일찍 만나는 불리한 조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상대는 중요하지 않다. 힘든 경기를 빨리 치르는 게 체력안배에 오히려 좋다”고 말해 준결승 또는 결승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완벽하게 회복했고 이전보다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는 그는 한발 더 나아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 아주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 통산 17승으로 남자테니스 최다 기록을 갖고 있지만 올림픽 단식 금메달은 없는 페더러는 2020년이면 서른아홉이다. 재활기간에도 머릿속에 은퇴를 그려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2014년 프랑스오픈 이후 메이저 우승을 보태지 못한 나달(세계 9위)도 단단히 칼을 갈고 호주오픈 개최지인 멜버른에 입성했다. 그는 메이저 14승을 자랑하지만 최근 6개 메이저에서는 8강에도 가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손목 부상으로 들쭉날쭉했다. 나달은 그러나 자택이 있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6주간 틀어박혀 강훈련을 한 직후 1일 무바달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재기 가능성을 확인했다. 비공식 대회였지만 세계 3위 밀로스 라오니치(캐나다), 10위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11위 다비드 고핀(벨기에)을 연파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 대회 직후 호주에 입성한 나달은 “있는 힘을 모두 짜내 새 시즌을 준비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상만 없다면 메이저 우승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시절 우상인 세계 1위 출신 카를로스 모야(스페인)를 올 시즌 새 코치로 영입하기도 했다. 호주오픈도 중요하지만 나달은 통산 아홉 차례나 우승한 ‘텃밭’ 프랑스오픈을 겨냥하고 있다.
물론 페더러와 나달이 주인공인 ‘신들의 시대’가 재연될지는 세계 1·2위 머리와 조코비치를 빼놓고는 예측하기 힘들다. 둘은 지난주 카타르 도하 엑손모빌오픈에서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머리를 꺾고 세계 1위 탈환 희망을 밝힌 조코비치는 12일 “놀랄 만큼 느낌이 좋다”며 호주오픈 3연패이자 통산 일곱 번째 우승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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