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떠났다.
박 소장은 31일 퇴임사에서 “세계의 정치와 경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가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며 “상황의 중대성에 비추어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아 있는 동료 재판관들을 비롯한 여러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헌법 수호자 역할을 다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앞서 지난 25일 열린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서 “헌재 구성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13일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퇴임에 이어 오는 3월13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가 재판관 7인 체제로 돌아가게 돼 자칫 심리정족수(7인)에 미달하면 ‘식물 헌재’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한 발언이다. 박 소장은 퇴임사에서도 탄핵심판의 조속한 심리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3월13일 이전 선고 원칙을 재확인했다.
2013년 4월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관은 “늦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제5대 헌법재판소장으로 취임했다. 대통령 몫으로 배정된 재판관 가운데 한 명으로 2011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고 임기 도중 박 대통령에 의해 다시 소장으로 임명됐다. 검사 출신 첫 헌법재판소장이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규정한 교원노조법을 합헌으로 결정하는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다. 간통죄에 대한 위헌 결정이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하는 것을 합헌으로 결정한 것도 모두 박 소장 임기 중 이뤄진 결정이다.
박 소장의 취임과 함께 헌재는 5기 재판부 체제를 시작했다. 5기 재판부는 위헌법률심판·탄핵심판·정당해산·권한쟁의·헌법소원 등 헌재가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다룬 유일한 재판부로 기록됐다. 박 소장 입장에서는 5기 재판부 활동의 정점인 박 대통령 탄핵심판을 마무리 짓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탄핵심판의 결론은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헌법적 판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만큼 더욱 그렇다. 박 소장은 “남은 분들에게 어려운 책무를 부득이 넘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했다.
박 소장이 떠나도 5기 재판부는 남는다. 재판부의 기수를 나누는 기준은 통상 헌법재판소장의 취임이다. 박 소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5기 재판부는 박 소장이 퇴임했지만 새로운 헌재 소장이 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5기 재판부로서 활동하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권한은 없다는 게 학계의 다수설인 만큼 탄핵심판의 결론이 나야 6기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소장이 이끈 5기 재판부는 탄핵심판을 마무리 지으면서 활동을 마감하는 셈이다. 박 소장은 “남아 있는 동료 재판관 등이 사건의 실체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해 헌재가 최종적인 헌법 수호자 역할을 다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국민들께서도 헌법재판소의 엄정하고 철저한 심리를 믿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8인 재판관 체제의 탄핵심판은 2월1일 열리는 10차 변론부터 진행된다. 재판관들은 이날 변론에 앞서 재판관회의를 열고 소장 권한대행을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심판과 관련, 국회는 29일 헌재에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이 총사퇴하더라도 탄핵심리는 이와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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