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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쓰리고]얄궂은 단맛, 대학로 '스노브'





2월만큼 우울한 달이 또 있나 싶다. 이미 연말연시는 끝난 지 오래이므로 한 해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연초에 세운 계획은 이즈음 되면 흐지부지돼 사라져 있을 확률이 높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하루하루 갈수록 방학이 끝나가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오는 시기다.

대학생 친구들에게 보냅니다. 너희들 오후 다섯 시에 전화해도 잠결에 받더라? 빨리 개강하고 주 5일 9시 수업으로 시간표 짜이기를 바란다.


이럴 때 900살 먹은 도깨비나 삼신할머니가 나타난다면 기분이 전환돼 좋겠지만 우리는 김고은 씨처럼 특별한 사람이 아니므로 인위적으로 기분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단것을 먹는 방법이다. 당분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2월의 당분 섭취는 또 다른 심경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설 연휴를 지나 급격히 증가한 지방에 당분까지 얹었다는 후회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달짝지근한 음식에 구미가 당겨도 케이크·마카롱·쿠키를 쉽사리 집지 못하는 이유다.

살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반박하지 맙시다.


그래서 준비했다. 세 명의 파티시에가 직접 만들어 설탕의 ‘노골적 단맛’이 나지 않는 케이크. 신선한 재료에서 우러나는 풍미로 ‘진솔한 단맛’이 나는 케이크. 대학로 스노브(Snob)다.

One go! 일단 ‘씹고’!

대학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스노브는 소개팅·데이트 코스로 추천을 주고받는 곳이었을 테다.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처럼 대형 빌딩에 세 들어있지 않고 마당 딸려 있는 하얀색 단층 건물을 쓰고 있어 들어갈 때부터 동화 속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문 열고 들어가면 갓 구운 케이크가 잔뜩 진열돼 있어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고 종종 말하는 이유다.

스노브 건물 전경. 믿기지 않겠지만 카페다.


오히려 이 장점은 감각이 섬세하고 예민한 싱글들에게 스노브를 추천하기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들어가면 거의 모든 테이블에 남녀 1명씩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달짝지근한 케이크 먹고 기분 좀 전환하려 했더니 주변에서 꽁냥꽁냥한 커플들의 움직임과 웃음소리가 들릴 가능성이 높다.

대학로이기 때문에 ‘아, 오늘 기분도 별로인데 혼자 케이크 먹으면서 독서나 할까’하며 편한 옷차림으로 하늘하늘 발걸음을 옮기기에도 매우 좋지 않다. 수다가 오고 가는 분위기인데다가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0에 수렴한다.

이런 화기애애한 느낌이다.


절대 혼자 가지 말고, 가더라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동행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기분 풀러 갔다가 심연의 외로움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이들도 싱글이었답니다. 올해는 사랑합시다. 아멘.


싱글들을 위한 배려일까. 스노브는 깔끔한 테이크아웃 상자를 구비해 놓고 있다. 물론 포장해 가더라도 주변의 커플들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냥 혼자 가지 말자. 진지하게 권한다.


Two go! 화끈하게 빨고!

동행할 사람을 구했다면 스노브의 수제 케이크를 마음껏 즐기면 되겠다. 이곳은 세 명의 파티시에가 직접 빵을 굽는다. 당연히 일선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된 케이크들이 많은데, 이 집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얼그레이·시트롱·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소개한다.

얼그레이(왼쪽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시트롱, 딸기 생크림 케이크


서두부터 스노브의 케이크는 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무슨 맛으로 케이크를 먹을까? 맛이 아니라 향으로 먹는다. 그 특성을 잘 살린 케이크가 얼그레이다. 홍차 중에서도 향과 맛이 진해 ‘홍차의 제왕’으로 꼽히는 얼그레이를 크림에 넣었다. 입안에 넣으면 얼그레이의 깊은 향이 서서히 가득 찬다.



이 케이크가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닥 시트로 깔아놓은 초콜릿 시리얼 반죽 때문이다. ‘홍차 맛 나는 케이크를 뭔 맛으로 먹나?’ 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인지 시트를 베어 물면 다크초콜릿 특유의 쌉싸래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시리얼을 함께 섞었기 때문에 바삭바삭한 식감도 재미있다. 스노브에 가면 거의 모든 테이블이 얼그레이를 시켜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다. 사랑받는 이유는 그만큼 맛있기 때문일 테다.

바닥에 색이 다른 시트가 시리얼 초콜렛이다. 케이크의 모양을 잡아주는 데다가 맛도 일품.




케이크 바깥에는 시리얼로 장식해놨다. 물론 고소하다.


시트롱 케이크도 향으로 따지면 뒤지지 않는다. 시트롱은 프랑스어로 ‘레몬’이라는 뜻인데, 스노브는 손님들이 못 알아들을까 염려해 ‘시트롱’ 앞에 ‘레몬 크림’을 붙여놨다.

‘중복 표현’? 맞춤법 실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넘어가자.


레몬의 시큼한 맛을 보고 있으면 금세 시트러스 향이 화하다. 크림에 정신을 집중하면 바닐라 향이 부드럽게 맛을 정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닐라 시드를 크림에 배합한 듯하다. 약간 무거운 음식을 먹고 입가심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시트 사이사이로 층층이 레몬 크림이 발려 있다.


레몬 향이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생딸기 케이크는 스노브가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생딸기 케이크조차도 향으로 먹기를 권해 본다. ‘흔해 빠진 딸기 케이크에 무슨 향이야?’ 싶겠지만, 딸기와 함께 한 입 베어 물면 밋밋한 생크림에서 우유에서 나는 풍부한 향기가 물씬 올라온다. 언제나 좋은 딸기를 써서 먹을 때마다 봄 느낌이 나는 즐거움도 있다. 분명 케이크를 먹었는데, 건강식을 먹은 느낌이 든다.

딸기 케이크. 화려한 장식이 돼 있지 않은 이유는 본연의 맛을 느껴 보라는 자신감일지도.


은혜롭다.


Three go! ‘자신을’ 맛보고!

기분 전환은 자기방어와 동의어가 아닐까. 이전부터 별난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단맛을 별로 안 좋아했다. 케이크는 더욱 싫어했다. 쉽게 물리는 달짝지근한 맛에 양도 많아 먹다 지치는 기분이 싫었다. “생일인데 케이크를 먹어야지” 하시는 부모님께 “생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어야지”하고 답할 정도였으니 왜 그렇게 단맛을 싫어했나 싶다.

단맛이 좋아졌던 건 무력감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무소방원으로 일하는 동안 구급차를 참 많이 탔다. 구급차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차다. 온갖 병과 사고로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그동안 친숙하지 못했던 ‘죽음’이 주변에 널려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정신없이 심정지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고 산소를 공급하며 병원에 환자를 인도하고 밤바람을 맞고 있던 날,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없음을 알게 됐다. 바람은 살을 에인 후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힘이 퍽 많이 드는 날에는 소방관 반장님을 졸라 제과점에 가고는 했다. 가장 단 빵을 골라서 먹고 있으면, 그래도 뻥 뚫린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힘들다고 해도 이 일을 누군가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를 지키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루는 불 냄새가 나는 옷, 또 하루는 피비린내가 나는 옷을 입고서 꾸역꾸역 빵을 입으로 밀어 넣고는 했다. 빵과 함께,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베어 물었다. 그다음에는 무력감을 씹고, 감사함을 느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삼키고... 억지로 기분을 바꿨다.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요즈음도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이 힘들 때는 단 음식을 먹으면서 스스로 기댈 수 있는 받침대를 쌓고는 한다. 그렇게 나는 기분을 전환하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침잠하지 않게끔 방어하고는 한다. 괴로움은 얄궂다. 감정을 단맛으로 덮는 일은 더욱.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위치: 혜화역 3·4번 출구 사이 큰 길로 들어가 올라가다 보면 하얀색 건물이 보인다. 4번 출구앞 ‘대명거리’가 아니다. 주의!



**가격: 케이크 조각 당 4,000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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